12 (B). 할아버지의 일탈

by 고동운 Don Ko

상조회 사람들과 춤을 배우며 시작된 일이 아닌가 싶다. 할아버지에게 ‘미옥’이라는 이름의 애인이 생겼다. 할머니가 군산 이모에게 며칠 가 있는 동안 그녀가 집으로 왔다. 할아버지가 중국집에 음식을 시키려고 하자 그녀는 돼지고기 대신 굴을 넣은 짬뽕을 먹겠다고 했다. 돼지고기를 먹으면 얼굴에 무언가 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분을 바른 그녀의 얼굴에는 여기저기 여드름이 나 있었다. 나이 어린 내 눈에도 그녀는 화류계 여성으로 보였다. 아마도 할아버지가 돈이 좀 있는 척 그녀 앞에서 허풍을 떨었던 모양이다.


얼마 후 할아버지가 외박을 했다. 나중에는 아예 대놓고 할머니에게 통보를 하고 정기적으로 외박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할머니가 내가 보는 앞에서 할아버지와 다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밖에서 만나서 온 것인지, 아니면 집 근처에서 할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리던 그녀를 데리고 들어 온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할아버지와 그녀가 사랑방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할머니가 마당 한구석에 놓여 있던 빨래 방망이를 집어 들더니 걸레로 방망이에 묻어있던 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사랑방 문을 열어젖히고 돌진해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막아서는 바람에 그녀는 방망이를 피할 수 있었고, 그녀는 서둘러 돌아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원이 되어 결국 할아버지의 짧은 연애는 끝이 났다. 사위와 딸에게까지 알려지자 할아버지가 스스로 정리를 한 것인지, 아버지가 나서서 그녀에게 돈을 집어주고 떼어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언젠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만나 그녀와 헤어질 것을 종용하자 할아버지가 울면서 말했다고 한다. 그녀를 정말 좋아한다고. 할아버지의 일탈은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다.


그때 춤바람과 함께 바람이 난 사람은 할아버지 혼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후 상조회에서는 봄, 가을 부부동반 여행이 생겨났다. 할머니는 ‘미옥’이 덕에 할아버지와 함께 부부동반 여행을 하는 호사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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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할아버지, 아버지의 외4촌, 아버지, 아버지의 외숙모,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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