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후반, 냉전시대가 끝이 나며 캘리포니아 주의 방위산업은 폭탄을 맞게 된다. 더 이상 고가의 미사일이나 전투기를 대량으로 제조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방위산업체와 협력업체에서는 대량 해고가 이어졌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산재보험으로 몰려들었다. 6개월이면 중단되는 실업수당에 비해 산재보험은 장기간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고, 진료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산재전문 변호사와 병원이 호황을 누렸다.
내가 근무하던 주 산재기금도 몇 년 사이에 직원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 지역 사무소마다 20-30명이 일하던 보상부의 인력이 40-50명으로 늘어났다. 나는 ‘WCIR I, II, III’ (Workers’ Compensation Insurance Representative I, II, III)로 매년 한 단계씩 승진을 했다. 그리고 90년대 초반 수퍼바이저가 되었다.
산재근로자에게 재활교육을 제공하는 재활상담사 (rehabilitation consultant) 자리에 지원을 했다가 미역국을 먹었다. 나보다 경력이나 실적이 부족했던 백인 직원이 뽑혔다. 외근을 해야 하는 자리인지라 상부에서는 과연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몇 달 후 다시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인터뷰를 하며 차를 타고 외부에 나가 활동하는데 문제가 없음을 설명해 주었다. 실제로 1년 반 그 일을 하는 동안 나의 장애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적은 한차례도 없었다.
외근직과 관리직에는 회사 차가 주어졌다. 회사에서는 새 차에 내가 운전을 할 수 있는 수동 장치와 휠체어를 싣는 박스를 달아 주었다. 그 후 20년 동안 3차례 같은 방법으로 나의 차를 바꿔 주었다. ‘부시’ 대통령이 90년에 서명하여 법이 된 ‘장애인 보호법’ (ADA) 이 시행되고 있어, 회사에서는 군말 없이 지원을 해 주었다. 재활상담사로 일하는 동안 다른 직원들보다 많은 양의 일을 하며 회사의 고마움에 보답했다.
‘장애인 보호법’의 시행과 함께 주 정부의 각 부처에는 ‘장애인 자문위원회’ (Disability Advisory Committee)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장애인에 대한 주 공무원의 인식개선과 장애인 직원들의 자긍심을 키워주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자문위원으로, 후에는 위원장으로 10년가량 봉사했다.
그 일을 하며 보람 있었던 일 중의 하나는 장애인 학생을 위한 장학기금에 회사 돈을 기부한 일이다. 나는 ‘노스릿지’ 대학에 편입하던 첫해에 이 장학금을 받았었다. 내게 장학금을 준 사람은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던 장애인 여성이었다. 그날 장학금을 받으며 훗날 이 자리에서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겠노라 마음먹었던 일을 이룰 수 있었다. 산재기금에서는 수년 동안 장학금을 후원해 주었다.
회사에서는 보험전문교육의 일부를 외부 교육기관에 맡긴다. ‘IEA’ (Insurance Education Association)에서 수강을 하며 보니 5개 과목을 이수하면 보험전문인 자격증 강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어지 과목을 1년 반에 걸쳐 저녁 시간에 자비로 마쳤다. 그리고 ‘IEA’의 강사가 되었다. 20년 동안 매해 3학기씩 (봄, 여름, 가을) 산재보험법 강의를 했다.
IEA에 다니는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보험회사 직원들이다. 그중에는 나보다 경력이 많은 간부급 직원들도 있었다. 수료증을 받으면 봉급도 올라가고, 이력서에 경력도 늘어나기 때문에 수업을 듣는 이들이 많았다.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 강사를 골탕 먹이고 망신을 주기 위해 까다로운 질문을 하는 이들이 있다. 첫 수업에서 이런 사람들을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을 치켜세워 내 편으로 만들면 편하게 수업을 할 수 있다. 그들의 실무경험을 수업 내용과 맞추어 나누게 하면 훨씬 재미있고 유익한 수업이 된다.
나를 보험 조정관으로 채용했던 매니저 ‘린다’는 아이를 낳으며 회사를 그만두었다. 1년 후에 그녀는 나와 같은 직급인 ‘WCIR III’로 복직을 했다. 내가 수퍼바이저가 된 후에도 한참이나 같은 자리에 있다가 전에 부하 직원이었던 ‘마가레트’가 매니저로 있는 부서로 옮겨갔다.
미국인들은 직급이나 자리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부하로 있던 직원이 상사가 되어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말린’이라는 동료가 있었는데, 그녀는 내가 말단 직원으로 입사를 했을 때 이미 수퍼바이저 자리에 있었다. 그 후 30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다가 은퇴했다.
입사 7년 만에 수퍼바이저가 된 후, 나는 곧 매니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니저가 되기까지 16년이 걸렸다.
(water color by Grace 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