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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Jan 30. 2019

좋은 이웃

일상에서...

나이가 든 탓인지 요즘은 초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이른 새벽에 눈을 뜬다. 그날도 4시 반쯤에 눈을 떴다. 무슨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귀를 세우고 잘 들어보니 어디선가 물이 새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 보았으나 별 이상이 없다. 내가 뒤척이니 아내도 잠이 깼다. 물새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고 하자, 아내도 그런 것 같다고 한다.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옆집에서 물이 새는 것 같다고 한다.


옆집과 우리 집 사이에는 약 4-5미터의 공간이 있다. 담은 없고, 풀만 무성하다. 옆집에는 70대의 백인 영감이 산다. 그와는 가끔 잘못 배달된 우편물을 주고받기도 한다. 연말이면 우리는 그에게 와인을 선물하고, 그는 뒷마당의 나무에서 땄다는 탐스러운 레몬을 준다. 귀가 어두운 모양이다. 전에는 늘 TV를 크게 틀어놓아 우리 방까지 그 소리가 들리곤 했었다. 보청기를 쓰는지 요즘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몇 년 전에도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을 열고 내다보니 옆집의 스프링 쿨러가 돌아가고 있었다. 아내가 건너가 문을 두드리고 알려 주었다.


이른 새벽이라 문을 두드리는 소란을 피우기가 뭣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해가 뜨자 아내와 준이가 건너갔다. 한참만에 문을 열고 나온 그에게 물이 샌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우리 동네 집들은 50년대 말에 지은 옛날 집들이라 밑으로 1미터가량의 공간이 있고, 그곳으로 상수도와 하수도 지나간다. 아내 말이 집 밑에 20-30센티 정도 물이 차 있다고 한다.


3일째 되던 날 퇴근길에 보니 파이프 고치는 사람의 차가 와 있다. 불빛이 번뜩이고 공사하는 사람들이 들락거리며 공구 소리가 난다. 한 두어 시간 뚝딱이 더니 조용해졌다. 수리가 끝난 모양이다.


다음날이다. 내가 집에서 일을 하는 날이다. 오전에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옆집 영감이다. 레몬 한 봉지와 캔디를 한 상자 들고 서 있다. 지난밤에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며칠 만에 샤워를 했다며 환하게 웃는다. 별것도 아닌 일에 무슨 선물이냐고 했더니 좋은 이웃이 되어주어 고맙다고 한다. 친절하고 예의 바른 미국인의 모습이다. 금년 연말에는 좀 더 좋은 와인을 사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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