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나이가 들어가니 새해 결심은 이제 조금 더 절박해져 거의 버킷 리스트에 속하는 것들이 등장합니다. 가족의 건강이나 행복,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마음 따위는 이제 나의 새해 결심에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마음에 담아 두고 애를 써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행복이 내일까지 이어지지 않으며, 건강도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오늘 하루 잘 사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내가 금년에 이루고 싶은 일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민서와 준이가 한국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는 일입니다. 미국에 와서 우리와 산지 5년, 이제 한 번쯤은 한국에 가서 본인들에게 생겨난 변화와 주변의 변화를 보고 마음의 정리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입니다.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민서와 준이는 처남의 아이들이다. 5년 전, 처남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우리가 데려와 키우는 아이들이다. 큰 아이 민서는 미국의 정서에 잘 적응해 가는 반면, 작은 아이 준이는 늘 마음을 한국에 두고 있다. TV 도 미국 방송보다는 한국 예능을 선호하고, 머리도 한국 아이들처럼 자른다. 독수리 5형제라고 부르며 함께 지내던 한국 친구들의 근황이 늘 관심사다.)
두 번째 것은 당신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일입니다. 연말이 되기 전에 당신이 그린 그림으로 치장을 한 내 이름이 박힌 책을 한 권 내는 일입니다. 나도 이제 흔적을 남기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할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자주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삶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언젠가 내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글로 써주기를 바라셨고 나도 그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너무 오래 미루어 두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이제 아버지와 함께 땅에 묻혀 버렸습니다.
글을 모아 책을 만들어 놓으면 내가 사라진 후에도 그 이야기들은 남아 있겠죠? 우리 아이들과 나를 알던 사람들, 또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글을 읽으며 나를 기억해 주겠죠?
그동안 나의 삶을 풍성하게 장식해 주었던 당신이 내 책도 당신의 수채화와 유화와 스케치로 아름답게 꾸며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금년 크리스마스에는 와인 대신 이 책을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희망사항입니다. 이루어질까요?
이 글은 얼마 전 성당의 부부모임인 ME의 10/10 나눔 시간에 내가 아내에게 주었던 편지의 사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