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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

책 이야기

by 고동운 Don Ko Mar 13. 2025

시대가 변하면 소설이나 영화도 변한다. 요즘 나오는 범죄/미스터리 소설에는 기발한 플롯, 예상치 못한 반전 등이 등장한다. 어떤 때는 연달아 반전이 이어져 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때도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친다.


40-50년대 영화는 분위기가 다르다. 영상이 흑백일 뿐만 아니라, 스토리의 페이스도 급하지 않다. 범죄 소설도 마찬가지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들이 그러하다. 문체나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유형이 문학적이다.


작가 ‘로런스 블록’의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는 바로 챈들러를 연상시키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전직 경찰인 주인공 ‘매슈 스커더’가 10년 전인 1975년에 벌어진 일들을 회고하는 행식이다. 그는 강도를 체포하는 과장에서 사고로 어린아이에게 총을 쏘아 죽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매일 쏟아붓듯 술을 마시며 지낸다.


그는 면허 없이 사립탐정 일을 하며 산다. 돈이 생기면 두 아들을 키우는 이혼한 전처에게 돈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돈이 생기면 잊지 않고 교회에 십일조를 낸다.


그는 두 가지 사건을 해결하는데, 하나는 ‘암스트롱’이라는 술집의 단골인 ‘토미 틸러리’의 아내가 강도에게 살해된 사건이며, 다른 하나는 매상을 속여 세금을 떼어먹은 술집 ‘미스 키티’의 주인이 이중장부를 도난당한 사건이다.


틸러리 아내의 사건은 체포된 강도들이 자신들은 강도짓만 했지 그의 아내는 죽이지 않았다고 극구 부인하며 틸러리가 의심을 받게 된다. 그에게는 ‘케럴린’이라는 애인이 있다.


미스 키티의 이중장부를 훔쳐간 도둑들에게서는 5만 달러에 장부를 넘겨주겠다고 연락이 오고, 스커더와 그의 친구들은 강도를 만나 돈을 건네주고 장부를 넘겨받는다.


스커더는 두 사건의 진범을 모두 알아낸다. 사건이 해결되어도 마음이 후련해지기보다는 암울한 느낌이 더 크다. 선과 악, 우정과 배신의 선이 확실치 않다. 사람 사는 일이 그렇다. 본시 악당이 따로 없고, 정의가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10년이란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술집 주인들과 그의 술친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그가 즐겨 다니던 술집들도 모두 다른 가게로 바뀌었다. 전처는 재혼을 했고, 아이들은 커서, 돈을 보낼 필요도 없고, 이제 그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


소설의 제목 ‘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는 ‘데이브 반 로크’가 무반주로 부른 노래 ‘라스크 콜’에 나오는 가사다. 책의 분위기는 딱 40-50년대 흑백영화다. 영상미가 아름답고,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여운 영혼들이다. 책을 덮고 나면 끝난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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