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시험 보는 운이 있는 것 같다. 주 공무원 시험을 보아 3순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예산 부족으로 신규채용이 동결되는 바람에 나는 시험을 1-2번 더 보고 1년 이상을 기다려 채용면접을 보게 되었다.
처음 면접을 간 곳은 수질 관리국이었다. 마침 그날은 핼러윈이었다. 어릿광대로 변장한 두 명의 수퍼바이저와 인터뷰를 했다. 예산 통과가 늦어져 그러니 며칠을 기다려달라고 했다. 답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주정부 산재보험기금에서 (State Compensation Insurance Fund) 면접 연락이 왔다. 법률팀이었는데, 높은 선반에 파일을 올리고 내려야 하는 일이라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나를 다른 부서와 연결해주었다. 직장도 인연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산재보험기금과의 31년 인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독학으로 미국 고등학교 졸업자격시험에 (GED) 합격했으며 영어 대화에는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가 아주 유창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공무원이 되고 보니 영어가 미숙한 직원들도 일을 하고 있었다. 주어진 정보를 입력하고 서류 등을 정리해서 파일 하는 데는 많은 영어가 필요치 않다. 업무에 필요한 말은 반복되기 때문에 대충 단어를 이해하면 주어진 일을 하는데 별 지장이 없다.
내가 일을 시작한 곳은 우드랜드 힐스 지역사무소였는데, 30-40명의 직원이 있었다. 지역사무소장은 새로 들어온 직원들 모두와 개인면담을 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내 배경을 듣고 난 그는 내게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가 당신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 자리에 앉아있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싱긋이 웃더니 꼭 그 꿈을 이루라고 말해 주었다. 30년 동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그 꿈에 거의 근접했을 무렵, 은퇴를 결정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공무원 생활을 동안 늘 단기와 장기 목표를 가지고 살았다. 단기적으로는 다음 단계의 승진 기회를 찾았으며 중, 장기 목표는 관리직에 올라 지역사무소장이 된다는 꿈을 가지고 살았다.
입사 후 처음 볼 수 있었던 승진 시험은 Key Data Operator (KDO)였다. 컴퓨터에 정보를 입력하고 산재근로자들에게 지급하는 수표를 발행하는 일이었다. 곧 KDO로 승진을 했다. 다음 단계는 대학 졸업장 없이 전문직으로 갈 수 있는 Workers Compensation Insurance Technician (WCIT) 자리였다. 2년제 대학을 졸업하거나 말단 사무직 Office Assistant로 2년을 근무하면 시험을 볼 수 있었다.
WCIT 시험 자격을 갖추기 전에 Office Technician (OT) 시험을 보았다. OT는 직원들의 봉급과 인사관리를 하는 자리인데, 각 지역사무소에 한 명씩 밖에 없었다. 시험에 합격하고 얼마 후 저소득 주택관리국에서 연락이 왔다. 집에서 좀 먼 거리이기는 했지만 나는 그때 고속승진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다하지 않았다. 주택관리국에 채용이 되었다.
승진한 사람의 이름은 명단에서 지워야 하는데 누군가의 실수로 내 이름은 계속 명단에 남아 있었다. 한두 달쯤 지난 후 산재보험 기금의 LA 사무실에서 OT를 채용한다는 연락이 왔다. 집에서 훨씬 가까운 거리였다. 주택관리국은 규모가 작은 부서였고, 전문직은 엔지니어 학위가 필요했다. 아무래도 큰 물이 장래성이 좋아 보였다.
산재보험 기금의 LA 사무소에서 인터뷰를 하며 상황을 설명했다. 이미 OT로 승진을 했으니 해당이 안되지만 주택관리국에서 허락을 하면 이동은 가능하다고 했다. 내 상관은 주택관리국 매니저인 Bob이었다. 그에게 통근거리와 전후 사정을 설명하니 자리를 옮기는 일을 승인해 주었다. 미국인들에게는 핑계나 변명보다는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