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사무소는 50년대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었다. 옆에는 연못이 있는 공원이 있어 한때는 살기 좋고 일하기 좋은 환경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곳에서 일할 무렵에는 근처에 사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LA 다운타운을 떠나 교외에 살고 있었다. 그랬던 다운타운이 지난 10년 사이에 크게 변했다. 주상복합 고급 콘도와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다시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파트 렌트가 올라 돈 없는 사람들이 교외로 밀려나가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정부가 국민의 주거지를 정해주고 관리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정해 준다. 부자들이 몰려오면 집값과 집세가 올라 돈 없는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게 된다. 중산층이 살다가 떠난 지역으로 저소득층이 몰려온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 재개발이 필요하면 자본은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으로 몰려든다. 상대적으로 땅값이 싸고 개발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LA 지역은 50-60 년대에 교외로 발전해 나가다가 지난 10여 년 사이에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재개발 붐을 이루고 있다.
공원에는 노숙자들이 천막이나 종이박스로 보금자리를 만들어 상주하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무장 경비원이 있었고, 길 건너 직원 전용 주차장을 오가는 여직원들은 경비원의 에스코트를 받았다.
아직 장애인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며 건물에는 휠체어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도 없었다. 나를 채용하고 1층에 있던 화장실을 개조하기로 했는데, 출근하는 날 오전에 겨우 공사가 끝났다. 개조한 화장실은 남녀 공용 장애인 화장실이 되었다.
사무실은 철제 책상 네 개를 붙여 네 명의 직원이 마주 보며 일을 하는 구조였다. 담배를 피우는 직원들은 버젓이 책상에 재떨이를 놓아두고 흡연을 했으며 이를 두고 뭐라고 말하는 이들도 없었다. 그 후 휴게실 한쪽에 흡연실이 마련되며 사무실에서의 흡연은 금지가 되었고, 또 얼마 후에는 건물 안에서의 흡연은 완전히 금해졌다. 흡연자들은 뒷문 옆에 마련된 공간에서만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여름에는 뜨겁고 겨울에는 비도 오고 바람도 부는데 애연가들을 마다하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웠다.
미국에 와서 느낀 것은 상대적으로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 같았다. 물론 40여 년 전 한국에서 여자들이 내놓고 담배를 피우기 어렵던 시절이긴 하지만, 미국 남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지 않다.
4월 어느 날 매니저가 나와 다른 한 명의 여직원에게 비싼 식당에서 점심을 사 주었다. 알고 보니 그날이 'Secretary's Day' (비서의 날)이었다. 나중에 그날은 'Aministrative Professionals Day'로 바뀌었다. 관리직을 제외한 모든 사무직원의 날이라는 의미다. 비서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제한적인 의미 때문에 바뀐 것이다. 후에 산재기금에서는 이날을 '직원 감사의 날'로 삼아, 매년 야유회를 가졌다.
'Boss's Day' (상관의 날)는 10월에 있다. 이날은 부하직원들이 돈을 모아 수퍼바이저나 매니저에게 카드와 선물을 준다.
함께 밥을 먹으러 나가도 상사라고 해서 부하직원에게 밥을 사거나 하지 않는다. 선배와 후배라는 개념도 없다. 각자 자기가 먹은 밥값을 낸다. 누군가의 생일이 돌아오면 동료들이 함께 나가 식사를 하고 자기 먹은 값에 생일을 맞은 사람의 식사비를 참석자의 숫자로 나누어 내면 된다.
공무원은 수퍼바이저나 매니저라도 회식 따위를 할 수 있는 별도의 경비가 없다. 퇴근하고 한 잔 하는 문화도 없으며 친한 사람들이 어울려 자기 돈을 내고 식당의 해피아워에 가서 맥주나 칵테일을 마시는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