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나'와의 악연

by 고동운 Don Ko

전문직인 ‘Workers’ Compensation Insurance Representative’ (WCIR)는 대학 졸업장이 요구되지만 2년제 대학 졸업자나 사무직 공무원 유경험자는 한 등급 아래인 ‘Workers’ Compensation Insurance Technician’ (WCIT)을 거쳐 WCIR 시험을 볼 수 있다.


2년제 대학을 졸업하기 전, 사무직으로 2년을 근무하여 WCIT 승진시험을 볼 수 있었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자 전에 일했던 우드랜드 힐스의 지역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면접 없이 채용이 되었다. 다시 우드랜드 힐스 사무소로 돌아갔다.


컴퓨터가 보급되던 무렵의 일이다. 전에는 전동 타이프로 치던 편지들을 워드프로세서로 찍어내고 있었고, 산재 케이스의 자료도 컴퓨터에 입력해 놓고 있었다. 나는 양쪽으로 돌아가는 테이블에 올려놓은 컴퓨터를 옆 책상의 동료와 공유했다.


보험 조정관으로 1년쯤 근무하고 났는데 하루는 매니저가 나를 불렀다. 의료비 청구서를 검토해서 삭감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전 우리 사무실에서 시험 운영을 하기로 했는데 나보고 그 일을 배워서 하라는 것이었다. 나의 능력을 알아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하겠다고 했다.


몇 주간의 교육을 받고 그 일을 시작했다. 당연히 병원과 약국, 물리치료사와 의사들은 불평을 했다. 꿋꿋이 그 일을 했다.


2년제 대학도 졸업하고, WCIT 근무도 2년을 마쳐, 전문직인 WCIR 승진시험을 보았다. 이번에도 즉시 승진이 가능한 3순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마침 사무실에서는 WCIR 보험 조정관을 추가로 뽑는다고 했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수퍼바이저에게 나도 지원을 하겠노라고 언질을 주었다.


며칠 후 매니저 ‘다나’가 보자고 했다. 그녀의 방에 들어가니 이번 승진에는 나를 넣어 줄 수 없노라고 했다. 이유인즉, 내가 영어도 미숙하고 요즘 불평 민원이 너무 많이 들어온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그녀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영어가 미숙하다는 말은 그동안 업무평가에서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는 일이며 평소에 받던 의료비를 깎아서 지급하니 불평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이미 마음먹고 있던 일이라 바꿀 생각이 없었다. 영어 문제는 나를 UCLA extension 코스에 등록을 해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내가 맡아서 하던 일은 시험운영이 거의 끝나가는 단계로 곧 모든 사무소에서 시행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유일한 경험자인 내가 빠지면 새로운 직원을 훈련시켜 실무에 투입하기까지 공백기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그녀가 나를 잡아두려고 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두 번 다시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는 자원하지 않았다. 큰 회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평범한 일을 하는 것이 났다. 그래야 일을 잘하면 눈에 띄어 보상도 받는다. 윗사람조차 잘 모르는 일은 열심히 해도 알아주지 않는다.


나는 우드랜드 힐스 사무소에 있다가 LA로 간 수퍼바이저 ‘호세’에서 전화를 넣었다. LA 사무소에서도 WCIR을 뽑고 있었다. 며칠 후 면접을 보았고, LA 사무소에 채용이 되었다.


직원이 승진을 해서 다른 사무소로 옮겨가게 되면 부서에서는 송별 파티를 해 주며, 당연히 매니저도 참석해서 축하해 준다. 매니저의 입장에서는 직원을 잘 가르쳐 승진시킨 것이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면접도 보지 않고 나를 WCIT로 승진해 주었던 ‘다나’는 내 송별회에 오지 않았다. 그녀와의 악연은 그 후 몇 년 동안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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