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보험 조정관 (WCIR)이 되었다. 나와 함께 5-6명 정도가 채용되었다. 그중 나와 ‘애나’라는 이름의 여직원은 내부 승진이었고 나머지 4-5명은 외부에서 채용한 신입이었다. 2-3명은 1년을 채 넘기지 않고 회사를 그만두었으며 나와 동갑이었던 ‘존’이라는 이름의 직원은 내가 은퇴해 회사를 떠날 때까지도 남아 있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미국에서 공무원은 인기 직업이 아니다. 사람들은 사기업을 선호한다. 미국의 사기업은 자유경쟁시장의 개념이 강하다.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는다. 야망이 있고 경쟁력 있는 공무원들의 가장 큰 불만은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옆사람보다 2배나 일을 많이 해도 받는 봉급은 똑같다. 봉급은 직급과 근무연한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쉽게 실무에 적용할 수 없다. 공직사회는 보수적이며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실적이 좋아도 그에 준하는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 도리어 일이 잘못되면 책임이 따르고 승진 등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그러니 자연히 복지부동의 태도를 보이게 된다.
내가 일하던 주 정부 산재보험기금은 (State Fund) 한국의 공기업 또는 공단과 같다. 구조상은 주 정부의 한 부처이지만 일반 보험사와 경쟁을 하는 산재보험 회사다. 부처의 장은 국장이라 하지 않고 사장이라고 부르고 그 아래 부사장들이 있다. 사기업의 흉내를 많이 내려고 했다. 자주 실무자들의 의견을 수렴했고 반영하는 척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이미 상부에서 다 결정을 해 놓고 의견을 그쪽으로 몰아가곤 했다.
LA 사무소의 지하층에 있는 회의실에 모여 교육을 받았다. 이미 수년 동안 산재보험기금에 근무했던 나와 애나는 보험 조정관이 하는 일이나 사용하는 용어 등에 익숙했지만, 외부에서 들어온 신입사원들은 실무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공무원 시험은 일반적인 능력을 테스트하는 것이지 실무에 대한 사전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고시원에 들어가 몇 달, 몇 년씩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한국의 공무원 시험제도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2016년 기준으로 약 28만 9천 명이 지원해서 약 6천 명가량이 붙고 나머지 28만 3천 명은 낙방을 했다고 한다. 1.8 퍼센트의 합격율이다. 나머지 98.2퍼센트가 공부하며 준비한 기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공무원 시험 삼수, 사수생의 잃어버린 세월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영어와 국어, 역사 따위가 말단 공무원의 실무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교육은 사무소의 선임과 수퍼바이저들이 가르쳤다. 환기가 잘 안 되는 지하실이라 점심시간 후 오후 수업은 모두들 힘들어했다. 자칫 졸음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한 달가량의 교육이 끝나고 실무에 들어갔다. 산재를 당한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 주는 일이었는데, 산재보험 기금이 지급하는 보상에 불만이 있어 변호사를 선임한 케이스들을 주로 다루었다.
사무직 수퍼바이저가 사무용품을 관리했다. 연필이나 볼펜, 클립, 테이프 따위를 집에 가져가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새 볼펜이나 연필을 받으려면 다 쓴 것을 가져와야 새 것을 주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흉을 보았고, 그녀를 싫어했다. 난 그녀를 공손하게 대했고, 그녀와 잘 지냈다. 그때 나는 사람 사이의 관계란 주는 대로 받는다는 교훈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