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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이야기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책 이야기

by 고동운 Don Ko

‘보’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기력이 나날이 떨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고집스러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


치매에 걸려 요양시설에 살고 있는 아내는 그가 아들과 방문을 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혼자 집에 남은 그는 아내가 쓰던 스카프를 병 속에 넣어두고 그리울 때면 꺼내어 그녀의 향기를 맡는다. 이제 그 병의 뚜껑을 여는 일도 쉽지 않다.


매일 요양보호사들에 집으로 와 그의 식사를 챙기고 목욕을 시켜준다. 요양보호사들은 그에게 기저귀를 권하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며 자주 실례를 한다. 오랜 친구 ‘투레’와 반려견 ‘식스텐’이 유일한 기쁨이다. 다른 도시에 살며 역시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살고 있는 투레와는 자주 전화를 한다. 아들 ‘한스’가 있지만 좋은 관계는 아니다.


아들이 자신을 돌보려고 할 때마다 보는 자신의 한 부분을 빼앗기는 것 같아 이를 거부한다. 아들은 그를 편안하게 해 주려고 무엇이든 바꾸려고 한다. 아버지가 거실의 소파에서 자는 것을 보고는 병원침대를 사 온다. 한스는 식스텐을 다른 집으로 보내려 한다. 이제 보는 개를 산책시키기 위해 숲으로 가기에는 너무 쇄약 하고, 식스텐 같은 개는 더 긴 산책이 필요하다고 우긴다.


어느 날 보는 산책을 나갔다 숲에서 넘어지고, 한스는 식스텐을 데려간다. 그일 이후, 보는 한스가 찾아와도 외면하고 대화를 거부하며 아들이 사 온 음식은 먹지 않는다. 어느 날 투레가 전화를 받지 않자 불안한 마음에 아들에게 그의 안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투레가 죽었다는 소식에 크게 상심한다.


책은 요양사의 일지, 보가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꿈꾸듯 회상하는 과거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보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를 노인이라고 칭한다. 마지막 순간 보는 아들에게 “자랑스럽다”는 말을 건넨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카드나 편지를 쓸 때면 “사랑한다” 보다는 “자랑스럽다”는 말을 자주 쓰는 것 같다.


젊은 날, 나는 아버지와 다소 껄끄럽게 지냈다.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은 아버지의 결정 때문에 내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늘 그 일을 꺼내 들며 아버지에게 대들기도 했었다. 내 나이 40이 넘어서야 더 이상 그 일을 문제 삼지 않게 되었다. 나름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말년에 나 역시 한스처럼 내 마음대로 아버지를 바꾸려 했다. 의사는 아버지의 신장이 좋지 않아 염분섭취를 줄이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여전히 짠 음식을 선호하셨다. 어머니가 먼저 집에서 넘이진 후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고 아버지 혼자 아파트에 남게 되자 상황은 급속히 나빠졌다. 폐에 물이 차 심장을 압박해 몇 차례 아버지를 모시고 응급실에 가야 했다. 결국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핑계는 아버지를 편하게 해 드린다였지만, 나 편하자고 했던 일이었지 싶다.


아이들이 여럿이다 보니 늘 좋을 수만은 없다. 큰 아들과는 늘 조심스럽다. 말은 안 하는데 아마도 내게 무언가 섭섭한 일이 있는 모양이다. 요즘 조금 소원하게 지낸다. 아쉽고 섭섭한 일이 있더라도 나를 이해하고 용서해 주기 바란다. 나름 열심히 살다 저지른 실수였다고 변명해 본다.


이 책은 ‘리사 리드센’의 데뷔작이자 2024년 스웨덴 올해의 도서상 수상작이다. 작가는 할아버지를 방문하여 우연히 오래된 메모를 발견한다. 요양보호사가 남긴 할아버지 생애의 마지막 몇 년 동안의 기록들.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를 찾아 청소와 식사, 목욕 등을 도우면서 작가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인생 이야기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마침 이 책을 끝내던 날 있었던 일이다. 한 달 전쯤 시니어 센터에 가는 길, 우리 집 근처에서 사는 노부부와 동행을 하게 되었다. 그들을 태우기 위해 부부가 사는 집에 갔다. 집 앞에 온갖 잡동사니와 폐품이 쌓여 있었다. 잠시 후 나온 노부부. 부인이 동양사람이다. 영어로 인사를 했고, 일본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주에는 부인만 센터에 갔다. 요즘 안보이기에 센터에서 돌아오는 길, 운전기사에게 그 부부의 안부를 물었더니, 그 부인이 곧 한국에 간다고 한다. 알고 보니 한국사람이었다. 암투병 중인데, 항암치료 대신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고 있다. 외국에 사는 딸이 와서 함께 한국에 나간다. 아마도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다.


이제 말년을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가족에게 폐 끼치지 않고, 남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고 떠나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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