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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Jul 31. 2019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일상에서...

얼마 전 성당에서 “배우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12가지 이유”라는 주제로 부부 모임을 가졌다. 비슷한 또래들이 모인 탓인지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남자들이 내세운 이유와 여자들이 발표하는 이유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역시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경험이다.


여자들은 남편의 성실함,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 등에 큰 비중을 두었고, 자신들이 거두고 돌보아 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모성을 이유로 들었다.


남편들이 발표한 내용에는 아내의 아름다움이나 여성스러움, 단정함과 깔끔함, 맛깔난 음식 솜씨, 가족의 화합, 그리고 아기를 낳아준 일 등이 들어 있었다. 거의 절반 가량의 남편들이 아기를 낳아 준 것을 고마워하며 사랑하는 이유로 들었지만, 남편이 아기를 만들어 준 것을 사랑하는 이유라고 말한 아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임신의 불편함과 산고를 겪으며 아기를 낳는 여성들은 아이는 자신의 작품이라고 의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남자의 입장에서 아기의 출생은 상실과 변화의 시기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으로 아내는 급속히 달라진다. 아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눈치로 알아서 기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밤중에 아기가 울면 젖병을 데워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주어도 계속 울면 차에 태워 동네를 한 바퀴 돌아야 한다. 지출이 늘어나니 돈도 더 많이 벌어와야 한다.


나만 보던 눈으로는 아기와 눈과 맞추고, 모든 관심사는 아기의 일거수일투족에 가 있다. 반찬은 아이 중심으로 바뀌고,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아내의 불평도 이 무렵에 시작된다. 아기의 출생은 후손의 탄생인 동시에 경쟁자의 등장인 셈이다.


한 30년쯤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잠시 아내가 돌아온다. 뜨거운 사랑은 식었고, 연민의 정이 남았을 뿐이다. 그것도 잠시. 자녀들이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기 시작하면 손자들과의 경쟁시대가 도래한다.


남자로 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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