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아내의 생일이라 모처럼 아이들과 식당에 모였다. 함께 사는 조카아이들도 한국에 다녀오고 세미네도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조금 늦게 도착한 세미가 자리에 앉더니 전화기를 건넨다. 받아 드니 화면에는 초음파 검사 영상이 떠있다. 첫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8주가 되었다고 한다. 교육공무원인 사위의 방학을 맞아 스페인으로 휴가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날 알았는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8-12주가 되기 전에는 유산의 확률이 있다며 병원에서 8주 이후에나 가족들에게 알리라고 했단다. 부모들이 알게 되면 혹시라도 여행을 가지 말라고 말릴까 싶어 말을 안 했을 것이다.
이틀 전 아침에 아내가 들려주었던 꿈이 생각났다. 아내는 꿈에서 호랑이와 커다란 잉어를 보았다며 눈을 뜨자마자 내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 그거 태몽인데 혹시 막내가 생기려나”라고 했다가 아내에게 한 대 맞았다.
세미에게 태몽이야기를 들려주니 바로 그날 초음파 검사를 했다고 한다. 필연 같은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 아들 같다고 하니 저도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입덧을 안 하면 아들이라고 했다나.
시부모님의 반응을 물으니 소식을 듣고 시아버지는 눈물까지 글썽였다고 한다. 사돈은 나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그 정서는 거의 우리 부모 세대와 같다. 사위가 외아들이라 손자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기가 생겼다니 감격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런 면에서 난 좀 차가운 편이다. 손자들이 예쁘고 귀엽긴 하지만 좋은 것은 1-2시간이 고작이다. 아이들은 에너지가 충만하여 걷기 시작하면 감당하기 어렵다. 아이들이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아 가족을 만들어 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내 인생이 저무는 것 같아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며느리들이 임신을 했다는 소식과 딸의 임신은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앞으로 7개월 동안 겪어야 할 불편함과 출산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가슴이 짠하다. 친정부모와 시부모의 차이를 이제야 느껴본다.
아기의 태명은 '최고' 란다. 아빠의 성씨 '최' (Choi)와 엄마의 성씨 '고' (Ko)를 합쳐 만든 최고의 태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