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반에 17년 만에 한국에 다녀왔다. 내가 칼럼을 쓰고 있던 장애인 신문사의 김동범 국장이 나를 근로복지공단에 소개해 주었다. 한국에서는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보험을 관리하고 있다. 미국에서 산재보험 일을 한다고 하니 특강을 부탁했다. 그 일을 인연으로 근로복지공단과는 20여 년 가까이 인연을 맺고 있다.
한국의 관공서에서는 2-3년을 주기로 직원들이 자리를 옮기는 것 같다. 부서만 옮기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지역 사무소로 가기도 한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직원들에게 다양한 업무의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기 위함이며 선호지역과 기피지역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미국의 공직사회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부서의 통폐합의 경우에만 직원을 임의로 타 부서나 지역으로 보낼 수 있다. 먼저 지원자를 찾는다. 나는 31년 동안 일하며 LA 지역의 5개 사무소가 하나로 통합되던 때 딱 한번 타의로 사무소를 옮겨야 했다.
한번 채용된 사람은 그 자리가 없어지기 전에는 자리를 바꿀 필요가 없다. 나는 승진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가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갖고 만족하며 같은 일을 20년 이상해온 직원들도 여럿 보았다. 캘리포니아 주 공무원은 은퇴연령이 따로 없다. 본인이 원하면 죽는 날까지 일을 할 수 있다. (대부분은 공무원 연금을 받기 위해 65세를 전후해서 은퇴를 한다.)
전문직의 경우, 한자리에 오래 있음으로 인해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된다는 장점이 있다. 전문직을 익히는 데는 1-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2-3년에 한 번씩 자리를 바꾸면 겨우 일에 익숙해질 무렵에 또 새로운 환경을 맞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여러 가지 일을 배워서 잘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한두 가지 재능이 있게 마련이다. 자기의 재능과 취향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인위적으로 다른 일을 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회사로서도 손해가 나는 일이다.
내 직장동료 중에 ‘말린’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내가 입사했을 때 그녀는 이미 보험 조정관 수퍼바이저였다. 8년 후, 내가 수퍼바이저가 되어 동료가 되었고, 내가 매니저가 되고 수석 매니저가 되자 내 부하 직원이 되었다. 그녀는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고집하며 30여 년 같은 일을 하다 은퇴했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한계가 거기까지라고 말하곤 했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비슷한 또래를 만나면 학번을 묻는다. 그렇게 해서 선후배 서열을 정한다. 미국인들에게는 없는 정서다. 이들은 같은 또래, 또는 후배가 동료가 되고 상사가 되어도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직급은 업무를 수행하는 수단일 뿐이다.
현대사회는 지나친 경쟁을 부추긴다. 자리가 올라가고 연봉이 올라가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고 행복의 열쇠로 생각한다.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회사나 사회의 생산성이 올라간다. 그러나 우리는 일 잘하는 사람을 자꾸만 위로 올려준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자신의 한계점에 도달해서 더 이상 전과 같은 성과를 내지 못할 때 그 자리에 멈추게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그렇고 그런 실적을 내며 지내게 된다. 윗자리를 이런 사람들로 채운 회사나 사회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하는 일에서 만족을 찾는 것이 행복의 열쇠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