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은 학연이나 지연을 매우 중요시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먼저 학번을 물어보고 출신학교를 대학교부터 역순으로 묻는다. 그다음에는 고향을 묻고, 그래도 연결고리가 발견되지 않으면 일가친척이나 지인까지 끌어들인다. 미국에 사는 동포들도 더하면 더하지 결코 덜하지 않다. 그래서 한인사회에는 온갖 단체가 난무한다.
학교마다 동창회가 있고, 각 지방마다 항우회가 있으며, 군출신들의 모임도 육해공군 해병대는 물론 헌병 출신, 기갑부대 출신, 특전사, ROTC, 월남참전 등 무지하게 많다.
미국의 서민들에게 학연이나 고향 등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매우 실용적이다. 지금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마음이 끌리는 사람과 친하게 지낸다. 공직사회도 마찬가지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인맥이 있다. 어떤 줄에 서느냐에 따라 승진이나 보직의 혜택을 받기도 한다.
내가 LA 지역사무소에서 보험 조정관으로 일을 할 때, ‘major account unit’이라는 부서가 만들어졌다. 보험료를 많이 내는 대기업을 담당하는 부서였다. 일도 잘하고 고객 서비스를 잘하는 직원들을 우선으로 선발했다. 수퍼바이저는 내게 그 부서로 옮길 것을 권유했다. 나는 ‘우드랜드’ 사무소에서 새로 생긴 일을 했다가 혼이 난 적이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지금 있는 자리에 있겠다고 하며 오퍼를 거절했다.
새로 생긴 부서의 직원들은 담당하는 파일의 수도 적었고, 고객과 회사로부터 이런저런 혜택을 받았다. 회사에서는 업무에 따라 점수제를 적용하여 매 분기 높은 점수의 직원들에게 상을 주었다. 일반 보험 조정관들이 산재 케이스를 해결하면 받는 점수를 새로 생긴 부서의 직원들은 고객을 방문하는 것으로 쉽게 받을 수 있었다.
얼마 후 그 부서의 수퍼바이저가 한 여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라는 소문이 돌더니 그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알고 보니 그는 자신과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직원들 위주로 부서를 만들었다. 몇 사람은 업무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누군가의 줄을 잡고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그 줄의 맨 앞사람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게 된다. 그가 꽃길을 걸을 때는 힘 안 들이고 함께 꽃길을 갈 수 있지만, 그가 자갈길에 들어서면 마음의 준비 없이 자갈길을 걸어야 하며,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영문도 모른 채 함께 추락하게 된다.
코드가 같은 사람만 모여있는 집단은 모두가 같은 방향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다가오는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 강한 집단에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다른 시각으로 반목하며 다투는 대신, 필요할 때는 자기 목소리를 내어 모두가 서로의 입장과 시각을 나누고, 일단 결정된 사안은 힘을 합하여 이루어내는 집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