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주말 오전, “똑, 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Who is it?” (누구요?) 하며 문을 여니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중년의 신사와 그의 아버지 정도로 보이는 깔끔한 양복차림의 노인이 서 있다. 손에는 전단지를 들고 있다. J교회에서 전도를 나온 것이다. 이 동네 인종 분포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다. 가끔 라틴계 사람들이 가방을 들고 동네를 도는데, 그들은 절대 우리 집 문은 두드리지 않는다.
우리 집에는 늘 한인들이 찾아온다. 그동안은 중년의 여인들이 짝을 지어 찾아오곤 했는데, 신사복을 입은 남자들이 오기는 처음이다.
성당에 다닌다고 하면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종교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더니 그가 하는 말이 내가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 한다. 거의 같은 말을 얼마 전 은행에서도 들은 적이 있다. 그날 나를 도와주던 은행 직원은 내게 “사장님, 얼굴이 너무 밝으세요.”라고 했다.
이 말을 잘 풀어보면 ‘장애를 가진 당신은 당연히 우울하고 불행해 보여야 할 텐데, 왜 그리 밝은 표정을 짓고 있나요’라는 의미다.
어린 시절 가장 듣기 싫었던 소리는 어른들이 나를 위로한답시고 하던 ‘네가 무슨 죄가 있다고, 너희 부모와 조상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라는 말이었다.
나는 아무런 죄가 없다. 나의 부모님에게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 내가 장애인이 된 것은 사람들이 감기나 설사병에 걸린 것과 다르지 않다. 운 사납게 어린 나이에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만났을 뿐이다.
아직 고쳐보겠다고 침을 맞고 뜸을 뜨던 10대 초반에 나는 평생 걷지 못하리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걸어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부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장애로 인해 내 인생이 불행하다거나 내가 남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종교에 관심을 가진 10대 후반에는 하느님은 내게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해 장애를 주었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남들과는 다른 삶의 의미를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내가 ‘미운 오리 새끼’ 쯤 된다고 생각하면 산다. 20대 초반까지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장애인을 가까이할 기회가 없었다. 지금은 장애인이 많은 자리에 가면 도리어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낀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생각도 한다.
지금 누군가 내게서 장애를 없애 준다고 한다면, 굳이 이 나이에 익숙한 삶을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하게 될 것이다. 지금 이대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