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소치 올림픽이 끝나고 김연아가 은퇴를 발표할 무렵 나도 30년 캘리포니아 주 공무원 직을 은퇴하기로 마음먹었다. 45년 생을 시작으로 미국의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는 이미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캘리포니아 주 공무원의 경우 별 종직을 제외하고는 은퇴연령이 따로 없다. 본인이 원하면 나이 제한 없이 계속 일을 할 수 있다.
연금 수령이 가능한 은퇴나이는 50세부터 시작되지만 그때는 본봉 x 1% x 근무연한으로 연금을 계산하기 때문에 2%로 계산이 되는 55세 이후에 주로 은퇴를 한다.
수입만을 생각한다면 미국의 국민연금인 social security를 받을 수 있는 62세 이후에 은퇴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라 60 또는 62세까지는 그냥 근무를 해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58.5세의 나이로 30년 공직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많은 이들이 은퇴를 3개월, 6개월, 또는 1년 전에 미리 발표하기도 하는데 너무 일찍 말을 해 놓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업무를 추진하는데 레임덕 현상을 피하기 어렵다.
지역사무소장에게 30일 후에 은퇴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갑작스러운 발표에 주위에서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
은퇴를 하게 되면 대개는 큰 식당에서 은퇴식을 한다. 주 정부에는 직원들의 은퇴 파티를 위한 예산이 별도로 없다. 따라서 참석자들이 $30-40 에 티켓을 사고 참석하며 그 돈으로 식사비와 선물 등을 마련한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나는 아래층 대회의실에서 케터링으로 직원들과 점심 한 끼 먹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티켓 가격은 $10로 정해졌고 메뉴는 샐러드와 닭고기 튀김, 파스타와 케이크로 정해졌다.
컴퓨터와 책상을 정리하고 나니 남은 것은 달랑 상자 하나뿐이다.
막상 은퇴를 통보한 후 한 열흘 간은 한 밤중에 잠에서 깨곤 했었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한참이나 잠을 이루지 못한 날도 있다. 남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철밥통 직장이 아닌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무언가 다른 일을 해 보고 싶었다.
돌아보면 만감이 교차하는 긴 세월이지만 그냥 쉽게 털어버리고 싶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갈래길에 서게 된다. 이때 어느 길을 가더라도 훗날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된다. 그때 이 길로 오지 않고 저쪽 길로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새 직장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배운다는 설렘이 있다. 처음 가보는 오솔길 앞에 선 기분이다. 이곳에서 꽃도 보고 비도 만나며 낙엽도 밟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 새 것에는 희망을 걸 수 있어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