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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Apr 07. 2020

죽음이 없는 세상

책 이야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암울한 날들이다. 여느 때보다 죽음이 가까이 느껴지기도 한다. 제66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대상 수상작인 ‘야마다 무네키’의 SF소설 ‘백년법’을 읽었다.


원자폭탄으로 잿더미가 된 패전국 일본은 미국에서 개발된 불로화 기술인 ‘HAVI’(Human Antiaging Virus)를 도입한다. HAVI는 불로장생의 기술이다. 이 바이러스를 주입한 사람은 더 이상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그러나 세대교체를 위해 불로화 시술을 받은 사람들은 100년 후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법률, 즉 ‘생존 제한법’을 제정한다.


여자들은 가장 아름다운 20대에 시술을 받아 젊음을 지키려 하고, 남자들은 조금은 중후한 멋이 생기는 30대를 전후하여 시술하기를 선호한다. 아이를 낳아 성인이 되면 외모상으로는 부모와 같은 또래가 된다. 그래서 자녀가 성인이 된 후, 가족은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고, 부부는 새로운 사랑을 만나 또 다른 가정을 이루기도 한다. 호적상의 나이가 70-80대인 사람이 20-30대의 이성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일도 생긴다.


은퇴하는 사람도, 죽는 사람도 없으니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2048년, 드디어 백년법 시행이 눈앞에 닥친다.


한국도 등장하는데, 한국은 HAVI 시술 후 생존기간을 60년으로 제한하여 원활한 세대교체를 이루며 일본보다 선진화한 사회로 나온다.


국민들이 백년법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계몽을 해왔지만, 막상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백년법 시행 목전에 동요하기 시작한다. 민심을 얻기 위해 백년법 시행을 미루려는 정치인들과 HAVI로 인한 사회의 재앙을 막기 위해 백년법을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생존 제한법 특별 준비실’ 실장 유사 일파. 이 두 세력의 갈등 끝에 백년법 시행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감행한다. 후세를 위해 죽음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생명을 지킬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백년법’은 논쟁의 여지가 많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죽음이 없는 삶은 마치 끝이 없는 영화나 소설과 같다. 생명의 존엄성이나 삶의 소중함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첫 번째 국민투표에서 백년법의 시행은 부결이 된다.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부분의 유권자는 사회나 국가의 미래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먼저 걱정한다. 중요한 결정을 그들에게 맡기면 눈앞의 이익만을 챙기게 된다. 리더라면 희생이 따르더라도 대의를 위해 밀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당락을 걱정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총선을 앞둔 한국 사회의 모습과 유사하다. 민주주의의 한계다.


그 대안으로 책에서는 독재자 대통령이 등장한다. 그의 등장으로 백년법은 시행이 되지만, 그가 사면하는 사람은 죽음을 면할 수 있다. 그는 안락사를 목전에 둔 국회의원들을 사면하며 자신의 임기를 이어간다. 마치 유신시대 한국의 통일주체 국민회의와 비슷한 모습이다.


100년에 유예기간 5년을 더해 105년이 지난 사람들 중에 안락사를 거부하고 도망을 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들을 숨겨주고 도와주는 이들이 생겨나고, 독재정부는 그들을 찾아 처벌하며 죽이기까지 한다. 생존 시한을 넘긴 이들에게는 더 이상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재가 오래되면 부패해지기 마련이고, 세력다툼이 일어난다. 독재자 대통령이 다발성 장기 암(SMOC)에 걸려 생명이 몇 달 남지 않았다는 것이 알려지며 암투는 극에 달한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엎치락뒤치락하다 총리 측이 승리한다. 마치 박정희 대통령 시해 직후 한국에서 벌어졌던 군부의 암투와 같은 다툼이다.


갑자기 늘어난 다발성 장기 암(SMOC)은 치료약이 없는 불치병이다. 진단을 받고 나면 6개월도 살지 못한다. 이병의 원인이 바로 HAVI 바이러스로 밝혀지며 시술을 받은 사람은 16년 안에 모두 죽게 된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미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던 무렵, 어떤 의사가 TV에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 죽는 것은 다른 어떤 사고나 질병으로 죽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늘 너무 먼 곳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죽음은 황상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말을 요약한 내용이다.)


책은 군더더기 없이 빨리 전개되며 긴장의 연속이다. 손을 떼기가 어렵다. 상하 두 권을 이틀 만에 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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