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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Apr 13. 2020

사라지는 지구(Disappearing Earth)

책 이야기

‘사라지는 지구’(Disappearing Earth)는 미국의 신진작가 줄리아 필립(Julia Phillips)의 데뷔 소설로, 2019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다. 이야기는 8월 어느 날, 8살과 11살의 어린 자매가 검은색 차를 타고 온 남자에게 납치되며 시작한다. 무대는 일본과 알래스카를 접경으로 한 러시아 영토 캄차카 반도다.


8월 이후 한 달씩이 한 장(chapter)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각장이 하나의 스토리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은 모두가 서로 얽히고 연결이 된다. 마치 연작소설과도 같은 모습이다.


경찰이 찾아 나서지만 두 자매의 종적은 찾을 수 없고, 4년 전 10대의 소녀가 사라진 또 다른 사건이 알려진다. 범죄물 같지만 결코 범죄소설은 아니다. 사라진 소녀나 유괴범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들과 연관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외딴 지역인 캄차카 반도에는 원래 유색인종인 원주민이 있었고, 도시에서 이주해 온 백인 러시아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관광지로 개발이 되며 외국인들의 유입도 늘어나고, 외국인 노동자들도 등장한다. 원주민들은 외부인들을 경계하며 멀리한다. 이들 사이의 사회적 인종적 갈등이 등장하고, 구소련에서 독립한 주변국들의 힘든 경제도 언급이 된다.


구소련 시절을 그리워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건 일제시대를 그리워하던 나의 부모세대나, 지금도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향수와도 유사하다. 하지만 이들이 소련 공산당이나, 박정희 독재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기억은 힘든 과거는 지우고, 즐거웠던 기억은 간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현실이 힘들면 지나가버린 시간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집 건너편 공사장의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성적 환상에 빠지는 여인도 있다. 낯선 것에 대한 환상이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아 꿈을 접은 여인, 젊은 연인들의 갈등과 이별, 대도시의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 혼자된 인간의 외로움 등이 하나씩 등장한다. 가족과 공동체의 유대와 갈등에 대한 이야기며, 인간관계를 다룬 작품이다.


납치된 아이들은 마지막 장인 7월의 끝무렵에 등장하지만, 과연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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