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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May 18. 2020

교회와 광주

일상에서...

코로나 19로 인한 ‘자택격리령’ (stay-at-home order) 이후 주일이면 유튜브로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오늘도 여느 주일처럼 ‘cpbc’ 방송의 주일미사에 참여했다.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은 강론 시간의 상당 부분을 5.18 광주사태 이야기에 할애했다.


40년이 지났어도 그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긴 하지만, 아직도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는 정도로 그쳤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복음을 전하는 시간에 어떤 사건의 당위성을 따지며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미사는 시사대담 시간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에는 민주 정부가 있고 사법제도가 있다. 적법한 법적 절차를 거쳐 죄지은 사람을 찾아 처벌하면 되는 일이다.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모든 군인을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도 부당한 일이 아닌가 싶다. 군대는 명령이 절대적이어야 하는 조직이다. 사단장의 명령에 연대장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대대장의 명령을 소대장이 불신하며, 소대장의 명령에 일개 사병이 부당함을 주장한다면 그런 군대가 어떻게 나라를 지킬 수 있겠는가.


과잉진압과 발포를 명령한 상급자들을 찾아 책임을 묻고 처벌해야 할 일이다. 명령에 따라 작전을 수행했던 군인들에게는 더 이상 고통을 주지 말아야 한다. 총을 들었던 시민군도, 그들을 진압했던 계엄군도 모두 하느님의 자녀들이 아닌가.

 

굳이 따지고 들자면 교회도 과거에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십자가를 든 신부를 앞세우고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했다. 평화롭게 살던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금은보화를 약탈해서 자신들의 구원을 위하여 교회에 바치지 않았던가. 유럽의 그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들은 대부분 이렇게 지어지고 장식된 것들이다. 그들에게 수탈당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나라들은 모두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빼앗았던 금은보화는 언제 돌려줄 것인가.


‘미션’을 세워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살려주고 거부하는 원주민들을 살해하며 영토를 넓혀 나갔다. 그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세례명) 주고 약탈자들의 언어를 배우게 했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며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일본어를 가르친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신부님들은 왜 파벌을 가르는 정치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자행되어 온 사제들의 성추행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의 정치적인 소신은 사제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 나는 그들에게서 신앙의 인도를 받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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