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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Mar 04. 2018

Bob 이 죽었다

일상에서...

Bob 이 죽었다. 그는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 집 자동차들을 정비하고 수리해 주었던 카센터의 주인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그라나다 힐스'로 이사 온 89년의 일이다. 그는 우리 동네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며 자동차 정비를 하고 있었다. 셀프서비스 주유소가 늘어나며 자동차에 기름 넣는 일이 어려워졌는데 그의 주유소에서는 늘 친절하게 셀프 가격에 주유를 해 주었고, 가끔씩은 후드를 열고 오일 등도 살펴 주었다. 


그 후 내가 그의 정비 실력을 인정하게 된 일이 있었다. 아이들과 샌디에이고에 가는 길에 자동차에서 연기가 나며 심하게 떨리더니 고속도로에서 서 버린 것이다. 근처의 정비소로 견인을 하니 아예 손도 대지 않으려고 한다. 엔진 과열로 엔진에 금이 간 것 같으니 그냥 차를 버리라는 것이었다.

 

그 무렵 내게는 차를 버리고 새로 장만할만한 돈이 없었다. 200달러를 들여 차를 Bob에게 가지고 갔다. 워터 펌프가 고장이 나서 생긴 일이라며 엔진에는 별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후 그 차를 5년이나 더 사용할 수 있었다. 


정비시설을 없애고 편의점을 들이기 시작하는 주유소가 늘어갔다. 기름회사에서도 편의점을 운영하는 주유소를 선호한다고 했다. 주유소 경영보다는 자동차 정비가 본업인 Bob은 결국 주유소를 팔고 근처에 새로 정비소를 열었다. 


아이들까지 모두 운전을 하니 집에 차는 많고 헌 차들이다 보니 정비소에 갈 일도 많았는데 Bob의 정비 덕에 길에서 차가 서는 일 없이 잘 지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에게서 이혼 통보를 받고 영문도 모른 채 이혼을 당한 후 그는 여자 친구가 생기면 늘 내게 띠를 알려주며 궁합을 물어보곤 했었다. 그는 소띠였는데 채식 동물과 친하게 지내고 용이나 호랑이는 피하는 것이 좋다는 그럴듯한 충고를 해 주곤 했다. 


고객은 대부분이 단골이었고 그는 단골손님의 정비기록을 꼼꼼히 철해놓아 언제 무엇을 고쳤는데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연말이면 나는 그에서 와인을 선물했고 그는 와이퍼 정도는 그냥 갈아주었다. 


헌 차들을 새 차로 바꾸며 딜러에서는 고철값 밖에 주지 않는다는 낡을 차를 팔아 준 것도 Bob이다. 새 차를 타게 되니 자연히 그의 정비소를 찾는 발걸음도 뜸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그의 투병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듣고 찾아가니 낯선 매니저가 있었다. 그리고 몇 달 후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넓은 정비소 자리를 소유할 만큼 재산도 모은 그는 아마도 좋아하는 낚시를 실컷 할 수 있는 행복한 은퇴를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문밖이 저승이라고 했던가.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다. 


며칠 전에 보니 정비소의 간판도 바뀌었다. 난 더 이상 그 정비소에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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