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1940년대의 공기 속에서, 그 뒤로 학교는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애써 피해 다녀야 할 장소가 되었다. 담장 근처를 지나칠 때면 발걸음이 먼저 느려졌고, 교실 창에서 새어 나오는 소음이 등 뒤에서 오래 따라붙었다.
며칠 동안 나는 입을 닫고 지냈다. 어머니가 불러도 대답은 목에 걸렸고, 일을 시켜도 말이 손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다가 이유를 물었지만, 나는 문지방을 넘지 못한 신발코만 바라보았다. 학교 근처까지 갔던 발걸음이 돌아서던 순간, 셔츠 단추 하나가 어긋난 채로 남아 있었고, 그것을 고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몸속 어딘가가 눌린 듯 답답했으나, 무엇이라 부를 수는 없었다.
시간은 모진 감정을 천천히 마모시키는 힘을 가졌다. 얼굴을 태우던 열기는 가라앉았고, 말끝에 묻어 있던 날은 흩어졌다. 다만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남는 감각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교복 깃이 바람에 한 번 스치기만 해도, 손등 어딘가가 시큰해졌다. 오래 쥐고 있던 돌멩이를 내려놓지 못한 느낌.
나는 어느새 아이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발은 커졌지만, 서 있는 자리는 여전히 좁았다.
그 무렵 사람들의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먹을 것은 늘 모자랐고, 삶은 축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땅은 질척였고, 기름은 햇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공사장은 먼지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했다. 철봉이 맞부딪히는 금속음, 바람에 울리는 나무판자, 오래된 기계 틈에서 새어 나오는 기름 냄새가 한데 엉겨 공기를 눌렀다.
그 속에서 나는 어른들과 나란히 서 보려 했다. 허리를 세우고, 발을 벌리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연습. 그러나 그 선택은 자연스레 다른 무엇인가를 비워냈다. 그것은 ‘봄이’, 내 동생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뒤 어머니는 밤낮없이 밖으로 나돌았고, 봄이는 나에게서만 온기를 찾았다. 내가 공사장에 나가기 시작한 뒤로는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봄이는 내가 늦은 밤에 돌아오면 졸린 눈을 비비며 문 앞까지 나와 있었다.
“오빠 왔어?”
작은 손이 옷자락을 붙잡을 때마다 어깨에 얹힌 짐이 잠시 내려가는 듯했다. 그와 동시에, 집 안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간 정적이 발목을 붙잡았다. 오늘도, 아이는 혼자였겠지. 밥그릇이 비어 있는 시간만큼.
공사장의 어른들은 굳은 얼굴로 일하다가도 나를 보면 피식 웃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허리를 세우고 같은 자세를 취해도 여전히 어린아이임을 아는 눈빛. 그 웃음 사이로 나는 먼지를 들이마시며 마른 기침을 삼켰다. 그들의 침묵은 설명보다 먼저 몸에 남았다. 말로 치면 가벼웠을 것들을, 몸으로만 건네는 방식.
흙바람 속에서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과 같은 동작을 흉내 냈다. 바람에 섞인 흙냄새는 마른밥처럼 텁텁했고, 기름 냄새는 목 안쪽을 매캐하게 긁었다. 쇠를 내리치는 소리는 전쟁의 잔향처럼 땅속 깊이 스며들어, 발바닥 아래에서 울렸다.
이 소리와 냄새가 언젠가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 믿었다. 다리를 더 벌리고, 흔들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뒤에서 흘러나온 낮은 웃음 한 줄기가 그 믿음을 접어버렸다.
“애가, 어른 흉내를 다 내네.”
감독관은 담배를 입에 문 채 장화 끝으로 내 부어오른 발가락을 툭, 다시 툭 건드렸다. 장화 가죽이 닿을 때마다 발끝의 감각이 잠시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아픔보다 먼저 닿은 것은, 나를 사람으로 세지 않는 시선. 나는 고개를 숙였고, 먼지 섞인 침이 입안에 고였다. 어른들은 제 몫의 짐을 옮길 뿐, 그 장면을 오래 보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는 짐을 버티는 부속 하나쯤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늑골 안쪽까지 시멘트 먼지가 차오른 느낌이 들었다. 손바닥의 상처를 씻으려 물을 들이부었을 때, 나는 소리 대신 숨을 놓쳤다. 살점이 물을 머금으며 벌어지는 감각. 팔은 중간쯤에서 멈췄고, 더 들어 올릴 이유를 찾지 못했다.
방 안에서 봄이는 오줌에 젖은 이불 속에 웅크려 있었다. 배 위에는 아버지가 남긴 빈 소금 자루가 혓바닥 자국을 남긴 채 굴러다녔다. 아이를 안아 들 힘도, 이불을 갈 힘도 없었다. 손등의 진물이 미세하게 번지자, 봄이가 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아이의 입술이 닿을 거리. 나는 손을 뒤로 숨겼고, 그 자세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숨결만 오갔다.
나는 씻지 못한 채 그 옆에 누웠다. 감독관의 장화 끝이 발가락을 누르던 차가움이 어둠 속에서도 빠져나가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싶은 허기와, 여전히 물기를 머금은 어린 몸. 그 사이에서 나는 썩은 기름 냄새와 먼지, 손바닥에 남은 미열을 느끼며 짐짝처럼 누워 있었다. 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냄새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