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_2화

다시, 글자 앞에서

by 돈미새

그 뒤로 나는 공사장에서 눈에 덜 걸리는 존재가 되었다.

잘해서가 아니었다. 손이 작았고, 손가락이 얇았다. 어른들 팔이 들어가지 않는 틈에, 내 팔은 쑥 들어갔다. 감독관은 나를 불러 세우지 않았다. 이름도 부르지 않았다. 그냥 등을 떠밀었다. 썩은 창틀 쪽으로.

창틀 안쪽은 늘 축축했다.

햇빛이 닿지 않는 나무는 쉽게 부서졌고, 못은 자꾸 비켜갔다.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손목이 틀어졌고, 한 번은 못머리가 튕겨 손톱 밑으로 파고들었다. 바로 피가 나지 않아 더 오래 아팠다. 손톱이 천천히 들리며 살을 잡아당겼다.

“야.”

감독관이 내려다봤다.

손을 보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피 묻히지 마. 자재 버린다."

감독관은 내 손등이 아니라 판자의 청결을 걱정했다. 나는 뒤집힌 손톱을 입술로 짓이기며 먼지 바닥에 손을 문질렀다. 사람보다 나무가 먼저 상하지 않게, 통증 따위는 그 다음 순서였다.

흙을 퍼 나르지 않는다고 몸이 편해지는 건 아니었다.

대신 아픔이 작아졌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손끝에 오래 남았다. 밤에 누우면 손가락이 제멋대로 굳어 있었다. 임금은 같았다. 아니, 더 깎였다. “애 손으로도 되는 일”이라는 말이 이유였다.

퇴근길, 공사장 한쪽에 버려진 신문지 더미를 밟다 발이 멈췄다.

바람에 들린 종이 한 장이 신발에 달라붙었다. 떼어내려다, 글자 하나가 눈에 박혔다.

‘쌀’.

그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누군가 뒤에서 내 등을 잡아챈 것처럼. 학교 담장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던 날들이, 그 두 글자에 달라붙어 있었다. 글자를 안다는 사실이 들키면 안 되는 죄처럼 느껴졌다. 나는 얼른 종이를 구겨 발로 밀어냈다. 발바닥에 닿은 감촉이 오래 남았다.

그 뒤로도 비슷한 일이 자꾸 생겼다.

포대에 찍힌 글씨, 장부의 숫자, 찢어진 신문 귀퉁이. 뜻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는 글자와 모르는 글자 사이에 내가 끼어 있다는 느낌이 견딜 수 없었다. 손톱 밑 통증보다 더 질겼다.

집에 돌아오면 봄이는 늘 잠들어 있었다.

아니, 잠든 척에 가까웠다. 배가 고프면 아이는 깊이 잠들지 못했다. 이불 속에서 손가락을 빨아대는 소리가 났다. 축축한 냄새가 방에 배어 있었다. 이불은 자주 말릴 수 없었다.

나는 아이를 흔들어 깨우지 못했다.

밥을 먹일 것도, 갈아줄 여유도 없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손을 멈췄다. 뒤집힌 손톱이 아이 얼굴에 닿을까 봐. 혹시 피 냄새를 맡고 더 세게 손가락을 빨까 봐.

어느 날 저녁, 공사장 근처를 지나는데 불 켜진 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창문 안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더듬는 소리, 읽다 멈추는 소리. 나는 몇 걸음 가다 멈췄고, 다시 걷다 또 멈췄다. 발이 땅에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다가갈 수 없었다. 저 문을 열면, 오늘 밤 봄이는 더 오래 손가락을 빨아야 할 것이다. 어머니의 등은 한 번 더 굽을 것이다. 그 생각이 발목을 붙잡았다.

나는 결국 문을 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불을 끄고 방구석에 앉았다. 낮에 밟았던 신문지 조각이 주머니 속에서 바스락거렸다. 꺼내 펼칠 용기는 없었다. 그저 손가락을 집어넣어 그 번진 잉크의 굴곡을 더듬을 뿐이었다. 욱신거리는 손톱 끝으로 '쌀'이라는 글자의 획이 느껴질 때마다, 배고픈 봄이의 숨소리가 내 등에 채찍처럼 감겼다. 통증과 글자는 한 몸이었다. 나는 그 비릿한 감각을 오래도록 떼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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