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법을 배운 날
낮의 공사장은 몸을 갉아먹는 판이었다. 삽을 한 번 내리칠 때마다 손바닥 안쪽에서 진물이 밀려왔다. 나는 입술을 깨물어 소리를 눌렀다. 턱이 떨렸고, 떨림이 가라앉기 전에 다시 삽을 들었다. 얼굴 근육이 굳어 표정이 지어지지 않았다. 그 뻣뻣한 얼굴로 하루를 버텼다. 무릎은 오후가 깊어질수록 제 무게를 못 견디고 부어올랐지만, 쉬는 손은 곧바로 표가 났다. 나는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흙을 옮겼다.
해가 지면 일은 끝났지만 머리는 끝나지 않았다. 퇴근길에 교과서를 꺼냈다. 모서리가 닳도록 손가락으로 글자를 짚었다. 입술이 부르틀 때까지 소리를 낮춰 외웠다. 뜻을 헤아릴 틈은 없었다. 손가락이 멈추면 얼굴이 끼어들 것 같아, 종이를 넘기는 속도를 더 올렸다.
야학이 끝난 뒤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내 손마디에 박힌 검은 기름때를 보더니 칠판 지우개를 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지우개 가루가 양복 소매 위로 하얗게 내려앉았다. 선생님이 분필을 내려놓자, 조각 하나가 바닥을 굴러가며 짧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멎을 때까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발등만 내려다봤다. 눈을 들면, 지금까지 붙잡아온 것들이 한꺼번에 흩어질 것 같았다.
6월의 어느 아침, 흙먼지 냄새 사이로 다른 떨림이 섞여 들었다. 마을 어귀는 이미 뒤집혀 있었다. 라디오 앞에서 터지는 울음과 욕설이 길을 막았다. 신발도 못 신은 채 뛰는 사람이 있었고, 문턱에 주저앉아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소란을 비켜 공사장으로 향했다. 오늘 일당을 놓치면 야학의 기름값도, 어머니의 끼니도 끊길 판이었다.
공사장에 닿자 공기가 달랐다. 담배 불이 연달아 켜졌다 꺼졌다. 그때 남쪽으로 내달리는 군용 트럭이 담벼락을 스치며 지나갔다. 자갈이 튀어 내 발등을 때렸다. 감독관이 헐떡이며 뛰어들어왔다. 숨이 먼저 튀어나왔다.
“전쟁이다. 북쪽에서 밀고 내려온다.”
사람들은 서로의 멱살을 잡고 “진짜냐”고 울부짖었다. 누군가 홧김에 걷어찬 빈 양은 도시락 통이 자갈밭 위를 요란하게 굴렀다.
공포보다 먼저 계산이 튀어나왔다. 그럼 오늘 일당은. 내일은.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전쟁이라는 말보다 그 소리가 먼저 살을 파고들었다. 멀리 있을 봄이의 짓무른 손가락이 떠올랐고, 쌀통 바닥을 긁던 어머니의 마른 손이 겹쳤다.
나는 주머니에서 연필깎이 칼을 꺼냈다가, 그대로 다시 찔러 넣었다. 야학 교과서를 발치에 내려놓았다. 바람에 책장이 들썩였지만 줍지 않았다. 대신 떨어진 삽자루를 움켜쥐었다. 손바닥의 진물이 터져 자루가 미끌거렸으나 고쳐 쥐었다. 빈 양은 통이 멀어지는 소리와 함께, 공사장 안이 잠시 고요해졌다. 나는 흙먼지 속으로 얼굴을 숙이고 삽을 다시 내리찍었다. 오늘은 글자를 넘길 손이 아니었다. 배를 채우지 못하면 내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