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흘러
서울이 터졌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공사장의 아침은 기이할 만큼 멀쩡했다. 햇빛은 잔인하게 부드러웠고, 인부들은 오이 값이 올랐다는 말에 혀를 끌끌 차며 삽을 집어 들었다. 나도 그 틈에 섞여 있었다. 아무 일 없다는 얼굴들 사이에서, 아무 일 없는 척 서 있었다.
거리 쪽에 세워진 트럭들 옆으로 군인들이 모여 있었다. 한 병사가 고개를 숙여 걸쭉한 가래침을 길바닥에 뱉었다. 검게 번진 얼룩이 햇볕에 말라붙는 걸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괜히 삽을 끌어당겨 그 자리를 흙으로 덮어버렸다. 병사들은 총을 멨지만 자세가 흐트러져 있었고, 군복은 햇빛과 땀에 절어 소금기가 하얗게 올라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전쟁을 앞둔 얼굴이라기보다, 휴가를 빼앗긴 사람들의 얼굴에 가까웠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등을 서늘하게 긁었다.
“설마 진짜 전쟁이겠냐.” 누군가 그렇게 말했고, 사람들은 흙먼지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주머니 속 부러진 연필 조각을 만지작거렸다. 공사 대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전쟁이 나면 그 돈은 어떻게 되는 걸까. 계산이 먼저 떠올랐다. 공포보다 앞서 목구멍에 걸린 건 숫자였다.
나는 불안을 눌러놓듯 삽을 더 깊이 찍어 눌렀다. 삽날이 돌에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손잡이가 손바닥을 쓸었고, 굳은살 틈이 갈라지며 따끔한 통증이 올라왔다. 아픈 줄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손톱 밑으로 흙이 파고들었고, 그 감각이 머릿속을 하얗게 비웠다. 땅을 파는 동안만큼은 생각이 줄어들었다.
트럭은 계속 남쪽으로 흘러갔다. 병사들이 지나갈 때마다 장터의 소리가 한 박자씩 늦어졌다. 웃음이 끊기고, 말끝이 흐려졌다. 오후가 되자 공사장 건너편 학교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삽을 세워 두고 멀찍이서 그쪽을 훔쳐봤다. 교무실 창가에 어른들이 서 있었다. 책을 든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서로의 얼굴에 고개를 기울인 모습이었다.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툭 끊겨 나갔다. 다시 이어붙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만 남았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삽자루를 다시 움켜쥐었다. 진물이 배어나와 손잡이가 미끄러웠다. 손을 털어도 소용없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흙먼지 속으로 삽을 더 깊숙이 박아 넣었다. 땅이 꺼지고, 흙이 튀었고, 그 속에서 나는 계속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