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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Dec 24. 2022

야. 그거 드립이잖아.

- 초보 악플러 기록장

 애드리브(ad lib)가 애드립이 되었고, 드립 앞에 특성을 부여해서 '섹드립', '개드립', '세로드립'같은 표현이 탄생하게 되었다~카더라. 드립이라는 단어가 정착한 2022년. 농담의 신조어가 드립이라는 범위를 벗어났다. 인터넷 댓글 싸움 속 드립은 '그것을 아는가 모르는가'로 상대를 재단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그거 드립인데, 니가 예민한 거 아냐?"

"이 드립을 모른다고? 틀이네 틀."


 드립의 탄생은 대부분 인터넷 커뮤니티다. 젊은 층이 선점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후발주자는 유행에 뒤떨어진 사람. 또는 고지식한 중장년 꼰대 취급을 받는다. 드립의 문제점은 신조어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신조어를 모르면 "유행에 뒤처진다.", "젊은이들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정도로 끝나지만, 드립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고력부터 사회생활, 시사상식, 인지능력까지 재단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짤이라 불리는 것. 저것을 이해하려면 비트코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망한다는 일반론을 숙지해야 한다. 선상파티가 무엇인지, 사진은 게지만 '새우잡이 원양어선'의 고단함을 희화했다는 추론도 요구된다. 이것만 본다면 재치 있는 유머로 봐줄 수 있다. 그런데 짤이 누적되면 "원양어선 탈 거야?"라는 드립으로 단순화된다. "갑자기 무슨 원양어선 타령이야?"라고 되묻는 순간, 그들이 등장한다.


"드립이잖아. 바보야?"

"인터넷 설치 오늘 했냐?"

"나이를 떠나서 진짜 저거를 이해 못 한 거면 사회생활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드립의 폐해는 '따돌림'과 닮았다는 점이다. 특정 지식과 정보를 공유한 그룹이 새로운 방문자를 조롱한다. 웃지 못할 사실은 그들조차 새로운 드립을 이해하려고 인터넷에 질문을 쏟아낸다. 마치 중학교 시절 친구들 대화에 끼려고 하교 후 좋아하지도 않는 아이돌을 공부하는 것처럼 말이다.



개발자의 업무 강도를 빗댄 드립. 유쾌하게 넘겼지만 질문에만 집중하면 예삿일이 아니다. 노숙자가 회사에 살고 있고 샤워를 한다니. 게다가 복도에서 썩은 내가 난다면 보통 사안이 아니다. 사건의 본질보다 드립이 우선시되는 현상. 그들의 즐거움을 방해하면 '진지충', '꼰대'라는 소리를 들을 뿐이다.


 흔한 세로드립. 이게 실제라고 믿지는 않는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재밌어한다는 사실이 충격일 뿐이다. 위에서 언급한 '노숙자 드립'의 극단적인 변형이다. 드립을 방패삼이 본질을 망각한다. 스탠딩 코미디에서 저런 말을 했다면 흔쾌히 웃어 줄 수 있다. 하지만 저 드립은 태생이 '실제'라는 설정이다. 조작이나 대본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숨겨야 웃어준다. 드립이라면 모든 게 용서되는 세상이 오려나보다.


 진지충. 선비. 불편러. 나를 뭐라 불러도 좋다. 사안에 따라서 그들 편에 서기도 하고 제법 이해한다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드립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20~30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연령대는 70~80대라는 점이다. 인터넷이 보급된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들이 주적이라 여기는 사회 기득권 연령대가 인터넷 생태계에 무지하다는 것은 옛날 말이다. 같은 편으로 위장하고 있거나 드립판에는 참전하지 않는 판단력 정도는 있다. 목표가 70~80대였다면 할 말은 없는데, 그게 맞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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