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보 악플러 기록장
"틀린 말은 아닌데 저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나?"
댓글 창을 구경하던 중 익숙한 아이디가 보였다. "엇, 나네?" 무심결에 클릭한 영상에서 내가 쓴 댓글을 봐버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자기 객관화의 정점인가. 작성자를 확인하기 전까지 들었던 생각은 꽤 공격적인 어투라는 느낌이었다. 아이디가 가려져있었다면 내가 나에게 댓글을 할 뻔. 무슨 댓글계의 자웅동체도 아니고, 헛웃음이 나왔다.
같은 경험을 두 번째 했던 날. 웃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객관화를 중요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특정 주제에 몰두해 있으면 시야가 좁아는 게 당연하다. 감정에 휘둘리면 판단이 흐려지고 가치관이 변하는 일도 있다. 예전에 썼던 댓글이 볼품없어 보이는 이유가 필력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렇다고 해서 댓글을 묵은지처럼 관리할 수도 없었다.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시점.
- 원색적인 욕설은 하지 않는다.
-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없다면 참여하지 않는다.
- 조금이라도 후회되는 댓글이 떠오르면 찾아가서 삭제한다.
- 순수 악플러에게도 공격의 상한선을 정한다.
- 나의 댓글에 달린 대댓글에 반응하지 않는다. (사실상 확인을 안 한다는 소리.)
- 게시물당 댓글은 한 개만 작성한다.
- 수정보다는 삭제.
가인드 라인을 정하며 생각했다. 내가 공격하고 싶은 타깃은 누구인가. 같은 편을 공격할 확률은 없는가. 100%에 가까운 확신에도 상한선을 두어야 하는가. 싸움을 키우는 행위가 아닌가. 진실과 거짓 사이라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세월이 흘러도 당당할 수 있는 공격은 어떤 유형인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조금 회의적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나쁜 놈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는 사람, 비난을 유도하는 사람, 돌려 까는 사람, 희롱과 조롱뿐인 댓글을 보면 지나칠 수가 없고, 그들을 공격하는 행위에서 희열마저 느낀다. 여전히 내가 정의인가 하는 불확실성이 있지만 어쩌겠는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라도 하고 싶은 건 해야겠다.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착각하게 되는 게 있다. 그것이 오롯이 자신의 가치관이며 세뇌와 선동이 없다는 확신. 하지만 정의라 믿는 그것도 처음에는 무언가의 영향으로 시작된다. 하루 종일 생성되던 학교폭력 기사가 오보가 되는 일도 있고, 내막을 알면 의견이 뒤바뀌는 경우도 많다. 댓글러들은 "중립기어를 박는다."라는 표현으로 자기 검열을 시작했다. 진상이 규명되기 전까지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것. 하지만 100%는 없다. 6~7년 전 진상이 규명됐다고 여겼던 사건들 중 적지 않은 케이스가 번복된다.
"그때는 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이제 진실을 아니까 네 편이 되어줄게."
새로 알게 된 진실은 100%가 맞는가. 사건의 진위여부를 떠나서 비난하는 사람을 비판하면 그만이다. 때문에 본문보다 댓글에 중점을 둔 공격을 추구한다. B가 A에게 악플이 달았는데, A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판단이 안 서는 순간에도 B는 악플러가 확실하지 않은가. 누가 봐도 A가 잘못인 경우는 자백한 연쇄살인범 정도다. 100%가 아닌 A를 제단 하는 것보다 B를 공격하는 게 낫다.
A의 학교폭력 기사를 믿고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A의 가족과 지인을 죽음으로 몰아세우고 성희롱을 일삼는 행위는 정의가 될 수 없다. 그런 이유에서 B는 샌드백이나 다름없다. A가 학교폭력 할아버지로 밝혀져도 B는 여전히 악플러일 뿐이다. 정의 구현하는 악플러. 가장 추천하는 타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