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보 악플러 기록장
타인을 비판하는 상한선은 어디까지가 적절할까. 흉악범에게는 공격의 허용 한도가 무한대에 가까울 것이고, 음주운전이 적발된 연예인에게는 그보다는 낮은 강도야여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악'이라 판명된 시점에서 모두 살인범 취급을 받는 일이 허다하다. 정의구현이라는 방패는 자신이 악플러가 아니라는 정당성을 부여하고, 타인을 악으로 규정하는 대법관의 탄생을 돕는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그것이 실제가 되어도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만약 저런 댓글을 단다면 연쇄살인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죽음으로 모는 댓글은 달지 않는다. 마약? 도박? 인종차별? 그것들을 비판하는 행위가 정의에 가깝다고 인정하지만, 그로 인한 결과까지 정의일까.
가정을 해보자. 마약이 두 번 적발되고 음주운전까지 한 연예인이 있다. 정의롭다 여기는 악플을 달았는데 다음 날 정말 자살을 한 것. 나라면 PTSD가 올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당당할 수 있다는 사람은 존재했고, 나는 그들을 악플러라 부르기로 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정의 구현하는 악플러라니.
그들이 악플러라는 자각이 없는 이유는, "진짜 죽겠어?"라는 가벼운 마음. 그리고 정의는 그 정도 발언은 해도 된다는 착각. 악플러가 죽음에 대한 현실성이 결여된 미성숙한 부류라는 증명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것이 실제가 되는 일은 종종 있다. 관련 영상 댓글은 추모와 악플러 비난이 가득할 뿐 악플은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 악플을 단다면 최고로 주목받을 수 있을 텐데 왜 없을까? 추모 댓글 중 일부는 악플을 달았던 사람일 것인데, 그들은 평생을 숨은 죄인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브레이크 없는 정의구현의 결말은 좋을 수가 없다.
나 역시 후회하는 댓글이 있다. 학교폭력, 성차별, 음주운전, 마약, 도박, 불륜, 사기. 없어져야 할 것들은 많지만 없어져야 할 사람들은 생각보다 소수다. 가족 중에도 음주운전을 했던 사람이 있고, 도박에 손을 댄 지인은 한둘이 아니다. 유명인과 일반인의 책임감 측면에서 보면 또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타인을 공격한다는 본질은 다르지 않다.
그들의 죄를 가벼이 여기자는 의미가 아니다. 바늘도둑과 소도둑 모두 사형당하는 세상이 정의로운 사회는 아니지 않나. 신호위반을 한 연예인에게 모든 저주를 퍼붓는 댓글이 달린다. 학교폭력 기사에도 같은 말이 보였고, 흉악 살인 사건 뉴스에서도 그랬다. 신호위반이 잠재적 살인과 같음을 강조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흉악법 입장에서는 신호위반과 똑같은 비판을 받은 셈이다.
"사랑해."라는 말을 남용하지 말라는 표현이 있다. 진정으로 사랑을 전달하고 싶을 때 오히려 희석될 수 있다며. 비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죽어 마땅한 자가 등장했을 때 마음껏 공격하기 위해서, 아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