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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Jan 11. 2023

카메라 마사지와 글쓰기.

- 자기 객관화

"셀카는 찍을수록 는다."


 첫 셀카는 악몽이었다. 거울 속 내 모습과 너무나 달랐다. 각도를 달리하니 조금 나은 것 같다. 조명을 바꿔본다.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장소도 옮겨본다. 이런 행위가 본판의 진화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셀카의 결과물은 분명히 나아진다. 조금씩.


 어릴 적 가전제품 매장에는 실시간으로 촬영되는 손님 모습을 매대 위 TV에 틀어주는 곳이 많았다. 카메라를 홍보하는 수단이었을까. 어쨌든 그곳의 TV 화면에 또래 아이가 보였다. 뒤통수만 봐도 앞통수가 안 궁금한 평범한 아이. 촌스러운 옷.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 아이는 귀신에 홀린 듯 한 곳을 응시하고 움직일 생각이 없는듯했다. 오싹한 느낌에 자리를 뜨려는데 그 아이도 움직였다. 내가 멈추자 그 아이도 멈췄다. 이런 젠장.


 카메라 마사지는 셀카를 개선하는 과정의 확장이다. 살면서 자신의 뒷모습을 몇 번이나 보게 될까. 산책 중 마주치는 사람들은 1m, 10m, 100m 느낌이 다르다. 드론으로 촬영된 자신을 본 경험이 있는가. 연예인과 일반인의 외향적 객관화는 표정에서 두드러진다. 일반인의 사진 속 표정은 웃음 아니면 무표정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울고 짜증 내고 멍 때리는 얼굴은 담지 않는다. 나아가 그런 사람을 바라보는 표정까지 담을 일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 배우들이 맨날 하는 일이 그것이다.


 2차 시도의 원동력은 1차 시도, 즉 첫 번째 셀카라는 '객관적 자료'다. 하지만 일반인은 다각화된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 멍 때릴 때 입만 조금 닫으면 꽤 준수한 외모가 있다고 해보자. 일반인은 의도적인 피드백이 없으면 수정하기 어렵다. 반면 연예인은 자신을 보는 게 직업이라 수정하고 습관화한다. 수정된 멍 때리기가 대중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하면, 상대적으로 장점이 노출될 시간이 길어지는 셈이다. 연예인의 카메라 마사지가 발동하는 동안에도 일반인은 입을 열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 과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오랫동안 지속되면 "카메라 마사지를 잘 받았네."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카메라 마사지를 성형과 스타일링으로 치부하기에는 누적된 객관화 차이가 만만치 않다. 멀리서 자신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촬영해 보자. 걸음걸이, 옷, 신발만 바꿔도 전보다 나을 것이다. 거울 앞에서 축 처진 배를 보는 것과, 달릴 때 요란하게 출렁거리는 뱃살을 영화처럼 촬영한 영상은 동기부여 차이가 분명할 것이다. 카메라 마사지의 핵심은 다각적 자기 객관화라는 이야기다. 거기서 벌어지는 차이까지 질투로 승화시킨다면 내면의 객관화마저 박살 날 것이다.




 몇 년 전에 쓴 글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아무리 봐도 성의 없는 글이었다. "글은 못써도 열심히 썼다."라는 기억은 뭐였을까. 자조적인 표현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글을 써 내려간 기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이 남았다면 "열심히는 했는데 지금 보니 부족하네."라며 넘겼을 것이다. 바꿔 말해, 그때는 열심히 한 게 아니라는 객관적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일기장은 내면의 카메라 마사지에 필요한 객관적 자료의 대표다. 자신이 썼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릴 적 기록일수록 객관적 시각이 빛난다. 당장 일기를 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의 의식과 연결점이 많은 기록은 객관화가 힘들다는 소리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은 원고를 완성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일정기간 꺼내보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그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루틴이나 징크스가 아닌 객관적 시각을 얻기 위한 행동이었다.


"최고의 퇴고 방법은 기억상실이다."

"최고의 퇴고 방법은 평생 동안 퇴고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내면은 카메라 마사지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수정할 수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타인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경험하는 독서가 중요하고, 글쓰기는 내면의 객관적 자료가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개념의 조각일 뿐이다. 카메라 마사지가 없어도 인기 있는 연예인은 많다. 독서와 글쓰기가 없더라도 경험으로 성장하는 내면이 더 튼튼할 수 있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내면의 객관화는 셀카처럼 쉽게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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