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는 모르겠다.
어느 강연에서 작가는 단명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글쓰기 취미를 갖기 전이라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흘려들을 수 없었다. "나는 살기 위해 글을 쓰는데, 이게 더 빠르게 죽는 방법이라고?" 불안하고 찝찝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들어봤다. 종교인 수명이 1위라던가. 그런 뉴스.
원광대 보건복지학부 김종인 교수팀은 1963부터 2010년까지 48년간 언론에 난 3천215명의 부음기사와 통계청의 사망통계자료 등을 바탕으로 국내 11개 직업군별 평균수명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4일 밝혔다.
- https://www.etoday.co.kr/news/view/423612 2011-04-04 연합뉴스
1984년 일본 후쿠시마 의과대학 모리이치 교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종교인(76) 1위, 작가(60)가 최하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수명이 줄어들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김종인 교수팀의 2001~2010년 기록이 흥미로웠다. 그 기간에 수집된 정보에서 작가(74)는 중간이었고 연예인(65)이 최하위였다. 그리고 종교인 다음은 교수였다. 교수? 내가 읽은 책 반 이상은 교수가 썼다. 작가는 단명하는데 교수는 장수한다? 또 종교인이 쓴 책은 얼마나 많은가.
진지하게 생각했던 게 바보였다. 직업과 작업을 동일시하는 오류다. 글은 회사원도 쓰고 연예인도 쓴다. 작가도 운동하고 종교를 갖는다. 다시 말해 '글쓰기'라는 작업이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이 아니다. '작가'라는 직업에서 얻는 스트레스가 건강과 수명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다. 집계에 포함된 작가, 즉 신문에 실릴 정도면 전업 작가일 확률이 높다. 마감, 퇴고, 창작, 불안정한 수입에 시달렸을 것이다. 굳이 과학적 근거까지 필요할까 싶다. 비정규직 종교인이 하루 12시간씩 기도문을 작성하면 장수할 리가 없다.
만화 헌터X헌터 작가 토가시는 일주일에 10~20시간만 잤다고 한다. 원피스 작가 오다는 3시간만 자던 때가 있었다. 드래곤볼 작가 토리야마는 6일 동안 20분만 잤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 웹툰 작가도 마찬가지다. 웹툰작가 12명 중 10명은 지병을 앓는다는 기사도 있다. 하루 평균 창작시간이 10시간 이상인 작가가 60%를 넘고, 8시간 미만은 15%에 불과하다. 이러고도 장수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연예인과 작가는 원히트원더(딱 하나의 작품만 성공한 경우.)가 많다. 대중은 그들이 빛나던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하기 때문에 뉴스 소재로 안성맞춤이다. 때문에 그들의 죽음은 신문에 실려서 연구 자료로 집계됐다. 반면 파문된 종교인과 경력이 단절된 교수는 집계되지 않았을 것이다.
심리학에 '확증편향'이라는 표현이 있다. 자신의 관찰과 경험을 편향적으로 재해석하는 현상으로, 작가가 단명한다는 근거는 편향적 요소가 많다. 예를 들어 장수하는 작가에게는 관심이 없지만 단명하는 작가를 보면 "작가는 단명한다더니 사실이구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작가를 묘사하는 방식도 다르지 않다. 스크린 속 작가는 애연가이며 운동을 싫어하고 사회생활도 빈약하다. 운동은 안 하고 술 담배를 가까이하면 단명하는 게 상식이지만 관객들은 등장인물의 직업이 '작가'라는 사실에 몰두한다.
창작 활동이 스트레스에 취약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창작보다는 환경과 심리상태가 문제다. 어떤 창작물이 탄생할지 본인도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은 미래의 수입도 확신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일은 열심히 하는데 월급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직업이 얼마나 될까. 작가는 단명한다는 인식은 창작 활동이 건강에 해롭다는 고정관념을 불러올 수 있다. 이는 글쓰기 진입장벽을 높이고 글쓰기 활동을 고립시킬 수 있다.
머리를 많이 쓰면 단명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알려진 정보들은 DNA나 치매 관련 연구 결과를 자극적으로 해석한 제목이 대다수다. 과학자가 아니라도 인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장수한 작가와 살아있는 고령 작가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면 '머리를 안 썼을 때의 수명'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대 기술로는 무리다. 우스갯소리지만 머리를 쓰면 단명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도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명백해지는 순간 연구자들은 연구를 중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노동보다 육체노동이 장수한다는 것도 억측이다. 인지 피로가 쌓이는 이유는 휴식 부족 때문이다. 수면이 부족한 작가가 단명하는 현상에 반박할 생각은 없다. 보편적으로 봤을 때 스트레스와 운동량 차이라는 이야기다. 지식노동자가 적절한 운동을 한다면 육체노동자보다 건강하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 아닌가? 이건 토론거리도 안된다. 종교인과 교수가 육체노동자인가?
글을 쓸 때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글에서 온 것이 아니다. 작가로 성공할 수 없다는 불안감, 완벽주의적 성향, 독자들의 비판과 생계 걱정이 원인이다. 이것들로부터 자유로운 경우를 찾아보자. 일기가 떠오른다. 일기를 쓰면 수명이 줄어들까? 백 번 양보해서 작가가 단명한다고 해보자. "내가 작가야? 그리고 한 번 작가면 영원히 작가인가?" 시대도 변했다. 요즘 작가들은 운동을 중요시하고 수입도 출판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소설 하나에 인생을 갈아 넣는 작가지망생의 수명이 걱정스러움은 사실이지만, 그들에게 글쓰기를 빼앗는다면 진짜로 단명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작가는 단명한다."라는 인식이 조금은 바뀌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