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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이 활성화되면서 종이책과 전자책을 비교하는 일이 많다. 최근에는 오디오북도 참전하여 찬반이 뜨겁다. 실험과 연구는 종이책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불가항력이다. 환경과 비용면에서는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자책이 '별로'라는 연구결과를 인정하면서도 전자책을 선택해야 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디지털 읽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장르에 따른 실험결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실험 결과 스크롤 방식이 아닌 전자책 소설은 종이책과 큰 차이가 없었다. 전자책의 장점(편의성, 비용, 접근성)을 고려하면 소설은 전자책이 합리적일 수 있다.
전자책의 저평가는 '웹(Web) 읽기'에서 유래했다. 접근성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웹 읽기의 단점이 유전되었다. 초기의 전자책은 그럴만했다. 하이퍼 텍스트를 남용하는 스크롤 방식은 독서도 아니고 웹 서핑도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의 전자책은 웹 형식이 아니다. 이제는 전자책과 웹 읽기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브런치는 웹 읽기의 대표 유형이다. 브런치는 글쓰기 최고의 공간이면서 읽기는 최악인 곳이다.
브런치와 종이책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사전 지식'이 풍부할 확률이 높다. 오디오북 효과를 검증하는 실험에서도 그랬다. 독서를 즐기는 피험자 집단이 오디오북 이해도도 높았다. 브런치 이용자는 읽기 훈련이 완료된 사람이 많다. 게다가 주 연령층이 종이책 세대다. 당장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 니콜라스 카는 자신이 디지털 읽기에 노출되면서 집중력 손상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그는 10년 전 자신과 비교해서 읽고 쓰는 능력이 월등히 떨어졌음을 느꼈고, 결국 한적한 장소를 마련해서 글을 써야 했다. 이는 종이책 읽기로 훈련된 사람이라도 웹 읽기에 장기간 노출되면 퇴화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독서를 멈추고 브런치만 읽는다면 어떻게 될까? 과거의 내가 그랬다. "어차피 읽는 것은 같으니까."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결국 독서를 시작했다. 한계를 느껴서다.
독서의 장점은 덮어두자. 웹 읽기(브런치)의 단점이 너무나 많다. 우선 '스크롤 읽기'다. 스크롤은 위치 감각이 없다. 졸업 앨범을 떠올려보자. 동창의 정확한 얼굴과 이름은 떠오르지 않아도 그 아이의 사진이 대략 어느 위치인지는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특정 내용의 위치정보는 장기기억을 돕는다. 스크롤은 어떠한가. 스크롤은 내릴 때마다 위치정보가 바뀐다. 때문에 연구자들은 Page Up, Page Down 버튼을 활용하라고 조언하지만 익숙해지기 어렵다. 종이책의 무게, 즉 왼손과 오른손이 기억하는 남은 페이지의 두께도 같은 효과다. 그밖에 책의 향기, 장소, 물리적인 자세도 장기기억의 단서가 되어준다.
브런치는 전자책 방식이 아니고 웹 읽기 방식이다.
사회과학자들은 가늠(calibration)이라는 표현으로 얼마나 잘 해낼 거라고, 해냈다고 생각하는지를 연구했다. 가브리엘 살로몬은 가늠실험을 했는데, 아이들은 tv로 영화를 볼 때 이해를 더 잘할 걸로 느꼈다. 하지만 결과는 텍스트를 접했을 때보다 성적이 더 나쁘게 나왔다. 가늠의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내가 더 잘 이해했다고 착각하기 때문인데, 그것의 대상물 완성도가 디저털화로 고도화될수록 그 착각은 심해진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메타인지, 사고방식의 차이다. 쉬울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입시킬 인지자원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
다음은 '가늠'의 문제다. 잘 꾸며진 글을 읽으면 이해를 잘했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는 애튼버러 효과(attenborough effect)와 유사하다. 애튼버러는 영국의 동물학자이자 방송인이다. 그의 다큐멘터리는 완성도가 아주 높은데, 일주일 후에 기억을 더듬어보면 단편적 이미지만 본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가독성이 좋은 글. 폰트가 아름답고 삽화가 많은 글. 다시 말해 블로그 포스팅 같은 몇몇 브런치 글은 애튼버러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가늠의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브런치에 접근하는 환경은 PC나 휴대폰, 혹은 태블릿이다. 이런 환경은 투입되는 인지자원을 무의식적으로 낮춘다.
인지적 자원이 낮은 상태로 웹 읽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 개인적으로 공감했던 표현은 'F 식 읽기'다. 웹 읽기를 하는 사람의 안구 초점을 추적했더니 F모양이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웹 읽기는 첫 줄을 읽고 두 번째 줄이 아닌 3~4번째 줄로 넘어가면서 각 줄의 첫 단어를 세로로 읽는 사람이 많다. 브런치에서 에세이가 강세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인지적 자원 소모가 많은 장르는 웹으로 읽기 힘들기 때문이다.
브런치북은 '북'인데도 스크롤 방식이다. 전자책 형태를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 브런치 글을 많이 읽게 하려면 웹 읽기 방식을 버려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후로 브런치 글을 읽는 시간이 줄었다. 글을 F로 훑어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책이나 읽자."라며 브런치를 종료한다. 웹 읽기를 많이 할수록 독서 능력이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염려도 있다.
브런치를 줄이고 독서를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읽기 훈련이 완성된 사람들은 큰 차이가 없다. 브런치를 읽겠다고 독서를 그만두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웹 읽기에 노출될수록 읽기 능력이 퇴화한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확실하다고 봐야 한다. 브런치가 웹 읽기를 고수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모순이 있다. 브런치는 읽기보다 쓰기를 중요시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봐주는 사람이 많아야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글 역시 누군가는 F로 읽고 있을 것이다. 브런치가 전자책 읽기 방식을 도입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