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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Mar 06. 2023

자유의 현기증

- 자유의 감옥

 키르케고르는 자유의 현기증, 즉 무한한 가능성이 불안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며 "인간은 자유라는 형을 선고받았다."라고 말했다. 정치이론가 카이 선스타인은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의 가치를 언급하기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그들의 시대보다 풍족한 자유를 보장한다. 유학, 국제결혼, 이동수단의 발달, 인터넷 서비스는 너무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여 현기증을 넘어서 병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자유를 억제할 수 없다는 명제는 숭고하기 때문에 현기증에서 벗어나려면 자발적 통제가 필요하다.


 오바마가 한 종류의 옷만 입는 것은 유명하다. 스티브잡스의 검은 터틀넥과 청바지. 페이스북을 만든 저커버그도 비슷한 옷만 입는다. 그들은 옷을 고를 자유를 포기했다. 그들이 자기애가 부족하거나 패션센스가 없어서가 아니다. '옷을 고를 자유'가 후순위일 뿐이다. 덜 중요한 선택에 소비하는 인지적 자원을 더 중요한 일에 투입하여 몰입을 강화한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한 가지 옷만 고집하면 "네가 스티브 잡스냐?"라는 비아냥을 걱정해야 한다. 패션 테러리스트, 또는 경제적 여유가 없거나 지저분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타인을 의식하고 재단하는 자유가 높다. 특히 외모에 관한 언급을 관심으로 둔갑시켜 정당화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옷을 고를 자유를 포기할 자유'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카이 선스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사회는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의 가치를 얻기 힘들다.


 도덕심리학에 WEIRD권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있다. W.E.I.R.D는 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Democric의 약자로 산업화된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부자 서양인이다. WEIRD권이 언급된 이유는 심리학 실험의 피험자가 대부분 WEIRD권, 즉 영미권 명문대 학생이었기 때문에 보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서다. <바른 마음>이라는 책에 따르면 도덕 범위를 측정한 실험에서 WEIRD권의 도덕 범위는 '소수'였다. 소수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엉뚱한 결론에 도달했고 그것은 서구 중심 사고방식을 낳는데 일조했다. 갑자기 WEIRD권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자유와 우리의 자유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대표적으로 앞서 언급한 '옷을 고를 자유를 포기할 자유'가 그것이다. 자유가 다르다면 그로 인한 현기증도 다를 것이다.


 우리의 표면적 자유는 서구와 비등한 수준에 도달했다. 인권, 동성애, 아동 학대, 인종차별을 바라보는 사회 시각은 확실히 선진화되고 있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니 더 자유로울까? 나는 고등학교 1학년때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선택했다. 하지만 "학교도 안 다니는 아이랑 친하게 지내지 마."라는 편견을 경험해야 했다. 또래 아이들은 내가 학교 폭력 같은 문제로 자퇴를 했을 것이라 추측했다. 비슷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입양과 재혼은 자유다. 군대를 30살에 가는 것도 자유다. 대학을 안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틀에서 벗어난 자유를 재단한다. 서구에서 말하는 자유의 현기증이 우리에게는 '자유의 감옥'인 것이다. WEIRD권의 자유를 우리에게 끼워 맞춘 결과다. 그들이 우월하고 우리가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뿌리 깊게 박혀있는 본질을 외면했다는 뜻이다. 대학을 안 가는 것이 진정한 자유가 되려면, 선택에 대한 경제적 메리트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무시하지 않는 인식이 우선이다. 서양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에게 '자유의 감옥'을 쥐어주면 너도나도 대학에 진학할 것이다.


 자유의 현기증은 인간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환경을 제공한다고 경고한다. 해외발령, 유학, 국제결혼등 너무 많은 가능성은 확신을 감소시킨다. 익숙하지 않고 신뢰가 낮은 곳에 뿌리를 내린다. 이는 세계 공통의 문제다. 반면 국내의 상황은 현기증이 아니라 감옥에 가깝다. 수도권에 집중된 일자리는 뿌리내릴 선택권을 앗아갔다. 한국인은 사회 자본이 최하위인 나라에 살면서 개인적 신뢰 기반이 약한 장소에 뿌리를 내린다. 사회적 고립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감옥이 '형벌'인 이유는 사회적 고립이다. 우울증의 원인 중 하나도 사회적 고립이다.


 여기서 사회 자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EU는 사회적 자본을 상호 이익이 되는 조정 및 협력을 촉진시켜 주는 네트워크, 규범, 신뢰관계 등의 사회적 기구로부터 구성된다고 언급한다. 중요한 것은 '신뢰관계'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가 불공정의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신뢰. 직장이 지방에 있다고 능력이 폄하되지 않는 신뢰. 비혼주의가 경제적 성격적 결함이 아니라는 신뢰. 우리 사회는 신뢰가 없다. 도와주지 않고 도움 받지 않는다. 자유의 현기증이 자유의 감옥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가치는 포기로 대체된다. 출산포기, 취업포기가 그것이다. 차라리 현기증이 부러울 지경이다. 해답 없는 글쓰기를 싫어하지만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다. 이런 작은 글쓰기 행위가 신뢰 회복을 북돋아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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