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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Jul 07. 2023

현재를 살라는 말이 어렵다

- 현재 과거 미래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살고

평안한 사람은 현재에 산다

- 노자 -



 나는 하루종일 수만 가지 생각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이 과거와 미래의 기억이다.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면서 우울에 빠지고 "그렇다면 이렇게 되는 거 아냐?"라며 불안에 휩싸인다. 현재를 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노자가 아무 말이나 했을 리가 없다. 나는 평안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떤 책을 읽든 "현재를 살라."라는 수수께끼를 대입하며 읽었다. 괜찮은 단서를 얻어서 적어두기로 했다.


운전

 운전을 할 때 지나온 길을 복기하는 사람이 있다. "아까 그 비매너 봤어?", "거기서 좌회전을 했어야지!" 이것들은 현재의 운전을 방해한다. 목적지까지 남은 여정에 몰두하는 것도 그렇다. "저쪽으로 가면 차가 막힐 텐데.", "저번에 네비가 엉뚱한 길을 알려줬어." 무한한 가능성은 무한한 선택장애를 일으켜서 현재를 방해한다. 나는 이게 참 이해가 안 됐다. 현재를 살라는 말은 생각 없이 살라는 말일까? 철학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과거는 그보다 더 과거에 미래였다. 그것은 현재가 되었다가 과거로 변했다. 현재도 어느 시점에는 미래였고 조만간 과거가 된다. 미래 역시 현재를 지나쳐 과거가 된다. 따라서 현재는 과거이자 미래다. 말장난 같지만 중요한 점이 있다.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현재'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직접 수정할 수가 없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현재를 살라는 말은 반성 없고 계획 없이 살라는 말이 아니다.


명상

 나는 명상도 이해할 수 없었다. 멍 때리는 것과 뭐가 다르다는 걸까? 명상은 현재에 집중하는 훈련이었다. 호흡에 집중하라는 말은 현재에 집중하라는 의미다. 왜냐하면 호흡은 현재에만 있으니까. 명상은 해답이 아닌 훈련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과거와 미래에서 방황하는 사고방식을 현재로 가져오는 훈련이다. 가져다만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 생각에 인간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생각이 현재에 머물면 행동에 옮길 수밖에 없다.


노동

 "정신없이 살았더니 여기까지 왔네요." 성공한 사람의 인터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멘트다. 이 말의 이면에도 철학이 있다. 누군가의 미래. 그보다 더 미래. 그것은 누구라도 불안하다. 근원적인 공포다. 따라서 미래에서 현재로 피신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현재에 할 것이 없어서 미래와 과거를 기웃거리기 때문이다. 근면성실과는 다른 이야기다. 현재의 노동에 집중함으로써 미래의 불안과 과거의 우울을 외면하는 원리다. 노동이 아니라도 피할 방법은 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실현가능성이 낮다. 노동에 인생을 빼앗긴다는 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한다면 다르게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현재의 노동에 집중할수록 불안과 우울을 외면할 확률이 높다. 모질게 말하자면, 우울증에 걸릴 사람은 언젠가는 걸린다. 그것을 늦추는 방법이 현재를 사는 것이다.




 현재를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요즘은 아침 5시에 일어난다. 매일 1시간 걷고 30분은 근육운동을 한다. 1일 1식을 시작하면서 배달앱을 2주 동안 쓰지 않았다. 매달 쌓이는 20~30만 원은 약간이나마 미래의 불안을 낮춰줄 것이다. 살이 빠진 미래의 나는 과거를 칭찬하며 우울해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자신은 없다. 나도 그랬다. 세계적 멘토들의 일갈이 그저 "열심히 살아라."라는 잔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의지? 노력? 명쾌하게 표현하지 못하겠다. 하나 확실한 것은, 좋아하는 것(늦잠, 통닭)을 참고 고통을 견디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당연히 그랬어야 했던 것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다. 나의 현재가 습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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