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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Jul 08. 2023

카드 배송은 왜 그렇지?

- 직업의 귀천

 1차 배달 붐은 인터넷 쇼핑이었다. 초기에는 편의점 수령이나 택배 수거함 따위가 없어서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2차 붐은 음식 배달이다. 이 역시 초반에는 문제가 많았다. 식당은 한식과 분식류 포장 노하우가 부족했고 배달원도 실수도 잦았다. 이후 코로나와 쿠팡등의 영향으로 배달 서비스는 꾸준히 개선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서 변하지 않았던 게 있는데, 바로 카드 배달이다.


 첫 번째 카드 배송의 기억은 불친절 그 자체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택배와 음식배달도 엉망이어서 카드 배송만 탓할 이유가 없었다. 카드 배송에서 '낯선 결'을 느끼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5년 전부터다. 카드 배송은 자주 겪는 일이 아님에도 문제가 생기거나 불쾌한 경험이 유독 많았다. 처음에는 "내가 예민하다.", "운이 없었다."라고 여겼다. 하지만 의식해서 카드 배송 기억을 돌아보니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경험

 카드 배송 전화를 받지 못하자 배달원이 우체국에 맡기겠다는 문자를 남겼다. 우체국으로 가는 길에 전화가 왔다. "가족에게 카드 전달했습니다." 내가 답했다. "저는 지금 우체국에 가는 길인데요? 왜 바로 연락을 주시지 않고 이제야 알려주시죠?" 상대는 얼버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갑질하는 기분이 들어서 알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또 다른 카드를 받게 되었다. 배달원은 "생년 월일이요."라고 말하며 자신의 PDA를 내밀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익숙했다. 카드를 우체국에 맡기겠다던 그 사람이었다. 내심 불편했지만 그는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그다음 카드도 그 사람이 가져다주었다. 카드 배송은 직원이 바뀌기 전까지 항상 그 사람이었다. 그래서 늘 불편했다.


 카드 배송 직원이 바뀌었다. "카드 배송입니다.", "카드 배송입니다." 같은 문자가 두 번씩 왔다. 오류나 실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6개월 후에도 "카드 배송입니다.", "카드 배송입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한 번은 카드를 받은 적이 없는데 배송이 완료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해당 카드는 다음날 배송되었다. 주문한 카드와 다른 카드사의 발신자번호로 배송전화가 오기도 했다. 이후 카드 배송 직원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비슷한 문제가 반복됐다. 여러 사람을 겪고 나자 공통점이 보였다. 그들은 인사를 하는 법이 없었다. 복장은 배달원이라기보다는 마실 나온 옆집 아저씨 같았다. 반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고민했다.


"내가 편협한 사람일까?"

"직업에 귀천을 두는 것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인데?"

"나에게만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보기에는 확률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검색

 카드 배송의 구조가 택배와 음식배달과는 다를 것이라는 추론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반적인 배송과는 달랐다. 카드 배송은 본인에게 직접 전달해야 해서 우체국이 모든 분량을 소화할 수 없다고 한다. 카드 배송 업체가 있지만 그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카드를 발급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카드 배송 대부분은 '자활 근로'로 넘어간다고 한다. 자활 카드 배송 업무 경험담을 읽어보았다.


 하루 40~80개 정도가 배정된다고 한다. 음식 배달이라면 월 400은 거뜬할 양이다. 자활근로 카드배송 업무는 착취에 가까운 구조였다. 자활근로 월차를 내고 돌아오면 전날 밀려있던 배송을 한 번에 해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카드 배송 업체 직원은 자신이 배달하기 편한 주소지만 골라내고 나머지는 자활근로로 떠넘기는 일도 많단다. 게다가 자활근로는 스마트 폰을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어르신도 있고 정신력과 체력이 쇠약한 사람이 많아서 빠르게 관두는 일이 많다고 했다. 작성자가 무엇보다 거듭 강조한 애환은 무시와 갑질이었다. 사연을 듣고 보니 내가 겪은 일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카드는 원칙상 본인에게 전달해야 하지만 배달원이 임으로 사인을 해서 우편함에 넣기도 하는데, 배송을 받는 사람이 그런 경험이 있다면 "저번에는 됐는데 이번에는 왜 안되죠?"라고 따질 수도 있다. 우편을 받을 때 우체부에게 "어디서 온 편지죠?"라고 묻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카드는 어디 카드냐며 묻는다. 금방 나온다면서 20~30분을 기다리게 하는 사람도 있고, '대리수령'에 동의하지 않고서 무턱대고 타인에게 전달하라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사고는 전부 배달원의 책임이다. 본인이 신청한 카드 배송 전화를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사람도 많다.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개선의 여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카드배송 업무는 노하우가 쌓이기 어렵고 지속 가능성도 낮다. 이것이 배달원만의 문제일까?


 카드배송은 배송비가 없다. 하나의 카드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고려하면, 카드사는 배송비 따위로 고객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카드사 자신들이 부과하는 배송비를 높게 책정할 리도 없다. 우리가 카드 배송에서 겪는 불쾌함은 일종의 대기업의 착취와 다르지 않다. 이제 와서 카드 배송비를 받는 것도 무리가 있다. 애초에 카드사의 이윤을 생각하면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양질의 카드배송 서비스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기에는 고객경험이 적다. 기업은 불확실한 서비스 개선에 투자하지 않는다. 우리가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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