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아흔일곱 권째 -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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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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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조건 합격하는 공부만 한다> - 이윤규

저자는 공부방법에 관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공시생 커뮤니티에서 유명하다. 책은 '텍스트 시험'에 초점을 맞춘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현실적 전략에 집중한다. 책보다는 유튜브를 추천하고 싶다. 유명한 멘토와 합격수기 영상이 많다. 공무원과 자격증 시험에 특화된 단권화, 회독, 기출 분석이 공부의 '정도'는 아닐 것이다. 정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편법으로 보일 수도 있다. 사고력과 자기주장을 요구하는 시험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고리타분한 시험에 직면하기 때문에 읽어서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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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크> - 기욤 뮈소

독서에도 패턴이 생기는 것 같다. 마음이 지치면 범죄 추리 소설에 손이 간다. 솔직히 말하자면 독서는 해야겠는데 머리 아픈 책은 읽고 싶지 않을 때 고른다. 뜬금없지만 '이젤'이라는 단어가 반가웠다. (이젤은 그림을 그릴 때 종이를 지지하는 나무 사다리 그것이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읽을 때 이젤을 검색했던 기억이 있다. 독서를 통해서 어휘력을 늘리라는 말이 이것인가 싶었다. 예를 들어 해리포터에는 '사주식 침대'가 여러 번 등장하는데 모른다면 찾아볼 수밖에 없다. 직접 찾아보는 수고를 귀찮아한다면 어휘는 늘지 않는다. 독서 초기에는 "책을 읽으면 어휘력이 상승한다."라는 말을 마법처럼 여겼다. 읽기만 하면 자동이라고 믿었다. 아이가 언어를 익히는 것처럼 어휘의 습득도 공부가 아니라고 여겼다. 결과적으로 반만 맞는 소리였다. 특히 사물을 지칭하는 어휘는 문맥으로 익히기가 어려웠다. 20권에 한 번 정도 나오는 어휘를 독서만으로 기억하려면 IQ가 130은 되어야 한다. 이제는 모르는 어휘가 나오면 습관처럼 검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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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유니버스> - 라이언 홀리데이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너무나 지루했다. 책의 반 이상이 인용이다. 이런 책을 '인터넷 미담 모음집'이라고 비꼬는 듯한데 심각하게 동의한다. 독서량이 늘어가며 독서 눈치도 늘었다. 3분의 1을 읽었는데도 집중이 되지 않거나 작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면 인터넷에 검색을 해본다. <나는 자는 동안에도 돈을 번다>도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좋지 않은 평이 있었다.


추천을 받지 않고 능동적으로 선택한 책들을 떠올려봤다. 소설은 대체로 평이했고 고전은 검증된 것이니 문제가 있다면 나에게 있다. 철학과 과학 서적은 좋았다. 오히려 추천받은 책이 난해한 경우가 많았다. 마케팅의 거짓과 허영심에서 비롯된 추천도 있었을 것이다. 나를 과대평가한 지인의 추천도 있었다. 어쨌든 이런 실패 경험이 쌓여서 책을 고르는 안목이 높아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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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어네스트 헤밍웨이

너무너무 유명한 작품이라서 비판이 꺼려진다. 나의 독서 레벨은 "상 받은 작품은 재미가 없다."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위치다. 헤밍웨이의 명성에 위축되어 읽기 전부터 겁을 먹었다. 각 잡고 읽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끝났다. 책의 3분의 1이 작품해설이었다. 허락만 된다면 책 보다 길게 쓰였을 것 같은 해설이었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문학 작품을 읽을 때에는 오만가지 불평을 한다. 하지만 읽고 나면 얻는 게 있거나 여운이 남는다. <톰 소여의 모험>과 <호밀밭의 파수꾼>이 그랬다. 하지만 <노인과 바다>는 모르겠다. 분량도 적어서 "고통스럽게 읽을수록 기억에 남는다."는 나만의 독서 철학도 통하지 않는다. 구멍은 나에게 있는 것이 확실한데 그곳이 어딘지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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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 알베르 카뮈

열흘도 넘게 읽었다. 개인적인 사정도 있었지만 문장이 쉽지 않았다. 논픽션을 예상했는데 픽션이어서 놀랐다. '워킹 데드'같은 디스토피아 장르가 떠오르기도 했다. 현대사회의 코로나 시국과 닮았다. 통제와 격리, 의료진 부족, 일상생활의 변화. 페스트를 코로나로 치환해도 될 정도였다. <페스트>는 부정이 아닌 긍정에 관한 소설이라는 작가의 언급이 인상적이었다. 고생해서 읽었기 때문에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 같다.




실패하는 책 비율이 낮아져서 방심했다. <라이팅 유니버스> 잊지 않겠다. 나는 읽기 시작한 책은 무조건 끝까지 읽는다. 챕터를 스킵하거나 훑어보기도 용납하지 않는다. 고지식한 성격 탓이다. 이러한 특성은 명백히 잘못 고른 책임을 깨달았을 때 매우 고통스럽다. 책을 고르는 안목이 좋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효율만 따진다면 <라이팅 유니버스>는 반절에서 그만 봤어야 맞지만 규칙을 깨기 싫었다. 그런데 효율을 따지지 않고 하루에 2~3권씩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 읽는 것일까? 서평 사이트를 보면 1년 동안 신간만 500권 넘게 읽은 사람도 있다. 97권 정도 읽으면 하루 한 권은 기본일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속도가 붙지 않는다. 1000권은 예상보다 2~3년은 늦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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