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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종의 기원>이 떠올랐다. 수많은 연구 조사와 낯선 단어들. 다윈의 '자연선택'에 관한 집요함을 카슨에게서도 보았다.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카슨은 살충제가 생태계에 끼치는 악영향을 일깨워주었다. 매년 뿌리는 살충제의 화학성분은 토양과 동식물의 자손에게 천천히 축적된다. 항공기로 살포하는 살충제는 새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먹이사슬을 붕괴시켰다. 그에 반해 세대의 주기가 짧은 곤충은 무서운 속도로 살충제에 적응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두고 논란이 많다. 현대인에게 각인된 생태계 파괴라는 개념은 어디에서 왔을까? 생태계에 인간도 포함된다는 논리는 어떻게 정착했을까? 수많은 연구가 있었겠지만 대중적으로 알린 사람이 카슨이다. 카슨의 노력이 없었다면 현대 인류는 희귀병과 돌연변이가 만연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에 카슨의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카슨은 50년 뒤에 폭발하는 시한폭탄에 제동을 걸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터지는 폭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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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책이라서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미라클 모닝 챌린지를 접해봤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은 많지 않았다. 나의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작가의 일화였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사람들의 관심과 위로 덕분에 일어설 수 있었는데,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전자보다 후자가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사경을 헤매던 육체적 고통보다 외로움이 무섭다는 말이었을까? 뼈저리게 공감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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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작법서가 모여있는 책장이 있다. 지나칠 때마다 시선을 빼앗긴다. 소설 쓰는 법. 작가가 되는 법. 플롯과 기승전결에 관한 책. 훑어볼 뿐 대여하는 일은 많지 않다. 어떤 작법서든 "많이 읽고 많이 써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한 주제로 긴 분량을 써보라."는 소제목에 이끌려서다.
대다수 비소설은 A4 몇 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600페이지가 넘는 <종의 기원>의 서문에도 비슷한 언급이 있다. <침묵의 봄>도 마찬가지였다. 책의 메시지는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은 생태계와 인간을 파멸시킨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시험이라면 책을 읽은 사람과 요약만 읽은 사람의 답안은 같다. 그럼에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읽은 나는 농약을 보면 카슨을 떠올리고 원숭이와 비둘기를 보면 다윈을 떠올린다. 책을 읽기 전에도 진화론과 "살충제가 생태계에 좋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고 살아왔다. 이것이 독서의 본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한 가지 주제만으로 많은 분량을 쓰는 일은 유쾌하지 않을 수 있다. 창의적이지 않다는 불편함이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세계적인 도서는 인용과 반복투성이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을 때 너무나 지루했다. 나치의 만행을 반복해서 언급할 뿐이었다. 세부적인 사건은 정확히 떠오르는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악의 평범성'을 이해했고 그녀에게 설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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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은행이 얼마만큼 기괴한 시스템인지 알았다. <돈의 속성>을 읽고 난 후 의식적으로 금융 책을 고른다. 금융은 주식과 재테크에 관심 있는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금융은 의식주만큼이나 우리의 삶에 가까이 있다. 이쪽 계열은 꾸준히 읽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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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어 밤새 읽는 천문학 이야기>와 비슷했다. 이 책도 일본색이 짙었다. 교육을 염두에 둔 책이라서 그런 것 같다. 한국은 기초 과학에 무관심하며 일본이 부럽다는 목소리에 피로감을 느낀다. 20년 전에도 똑같은 지적이 많았지만 바뀌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연일 우리나라의 GDP를 앞세워 순위를 강조하는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기초과학 저하는 원천기술부족, 로열티지급, 주요 부품 수입의 원흉이며 이것들은 우리의 임금과 시간을 영원히 갉아먹는다. 정부의 탓만은 아니다. 출발이 늦은 국가는 어디라도 겪는 문제이며 우리는 선방한 편이다. 문제라면 너무나 멀리 와버려서 돌아갈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이다.
"한 주제로 긴 분량을 써보라."는 조언을 따라보기로 했다. 브런치 카테고리를 세분화해서 글을 축적할 계획이다. 당장 긴 분량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독서를 하다 보면 계속해서 쌓일 것이다.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92권을 읽어오며 체득한 확신이다. 독서를 할 때 "쓰기 위해 읽는다."는 말을 상기시키려 노력한다. 솔~직히 200권이나 300권 까지는 이렇다 할 결과는 없을 것 같다. 그 이후는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