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여든일곱 권째 -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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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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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소여의 모험> -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먼저 빌렸었다. 첫 장에 톰 소여가 언급되었는데 아무래도 <톰 소여의 모험>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허클베리를 덮고 톰 소여를 대여했다. 판단은 훌륭했다. 톰 소여를 읽지 않고 허클베리를 읽었더라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좋은 판단은 아무것도 안 읽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초반 20페이지를 읽으면서 불안한 예감이 스쳤다. 문장 스타일과 어휘가 낯설었고 등장인물의 행동묘사가 너무나 오밀조밀했는데, 한 마디로 읽기가 괴로웠다. 그런데 나는 꼼짝없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까지 읽어야 했다. 두 책을 합하면 1000페이지가 넘는다. 20페이지를 넘기며 한숨이 나왔다. "980페이지를 더 읽어야 한다고?"


세계적 명작을 읽고도 감동이 없을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한다. "내가 수준이 낮은 것일까?" 전에도 비슷한 예를 들었던 것 같다. HOT가 대단한 것은 맞지만 BTS를 좋아하는 요즘 세대에게는 낯설다고. 게다가 나만의 철학도 들어맞는다. "고통스럽게 읽은 책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앞으로 고전 명작을 떠올릴 때마다 톰 소여는 빠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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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 - 마크 트웨인

톰 소여는 작가의 시점에서 쓰였고 허클베리는 허클베리의 시점이다. 톰 소여의 공간은 마을이 중심인데 허클베리는 뗏목을 타고 다니며 다양한 지역을 거친다. 허클베리 속 등장인물과 사건은 개성이 넘치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는 단절된 느낌을 준다. 새로운 마을에 도착할 때마다 새로운 사전지식이 요구됐다. 나로서는 미국의 역사와 문화에 어둡다 보니 한 박자 늦게 이해한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을 즐겁게 읽으려면 미국에 관한 상당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총, 마약, 그리고 인종차별이 없으면 미국소설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도 도망친 흑인 노예가 등장한다. 그동안 읽었던 미국소설의 기본 태세는 '인종 차별 반대'였다. 그런데 마크 트웨인이 풍기는 분위기는 달랐다. 작가의 시점에서 쓰인 <톰 소여의 모험>에서 흑인과 여성을 비하하는 그의 말솜씨는 풍자보다는 자연스러움에 가까웠다. 그런데 마크 트웨인은 인종차별을 극렬히 반대한 선구자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내가 틀린 걸까? 어쩌면 나 같은 멍청이의 오해를 의식해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작가의 시점이 아닌 허클베리의 시점으로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가를 위한 독서라면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문학 공부가 목적이라면 추천이다. 군데군데 마음을 울리는 대사도 있고 여운도 있다. 하지만 잘 읽히지 않는 문장 1000페이지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우리 기억 속 톰과 허클베리가 글이 아닌 삽화나 만화인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 원작은 읽기가 어려워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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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철학에 빠진 날> - 스티븐 로

철학을 모르더라도 쉽게 읽히는 책이었다. 독서를 시작하기 전부터 심리학과 철학에 관해 다음과 같은 생각이 있었다. "철학 용어는 내가 한번 즈음 생각했던 개념에 이름을 붙인 것일 뿐이야." 이 책을 읽고서 어느 정도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작가는 어려운 철학용어를 배제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도입했다.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다. 잠들기 전에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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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후속이다. 전작처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조는 아니다. 전작에서 마오쩌둥과 김일성, 김정일, 아인슈타인이 한 장소에 있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 이번 스토리의 핵심에도 김정은이 있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독자에게 흥미롭다. 실존 인물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이 책을 트럼프와 김정은이 읽는다면 스웨덴에 미사일을 갈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얌전 빼지 않고 자유롭게 풍자한다. 허구지만 국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후반에는 탄자니아의 세렝게티가 나오는데 얼마 전에 읽었던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아프리카 이야기>가 떠올라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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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어제 브런치(팩트풀니스 사실충실성)에도 썼다. 한스 로슬링은 집필 중에 사망했다. 그는 '사실 전달'에 집중했기 때문에 특정 세력의 왜곡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래서 덜 알려졌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지구 온난화의 최악의 결과를 그래프로 제공해 달라는 부탁을 거절한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그도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동의했지만 공포조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의 지식을 왜곡에 이용했더라면 누구보다 유명한 활동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세상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발견하고 기억할 의무가 있다. 진정 의미 있는 삶을 엿보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지금 이 부분은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적고 있다.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후기에서 "안 읽는 것이 나았다."라고 적은 부분을 번복해야 할 것 같다. <종의 기원>을 읽으며 저주를 퍼부었지만 다른 책을 읽을 때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마크 트웨인도 많은 곳에서 인용되는 인물이다. 독서도 하나의 큰 퍼즐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독서를 통한 지식은 이렇게 쌓이는 것일까? 고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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