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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Oct 27. 2023

매슬로우 욕구이론의 늪

- 인정욕구의 퇴화

매슬로우 욕구이론

 최근에 읽은 책 <인정욕구>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심리를 다룬다. "인정욕구는 매슬로우 욕구이론의 4단계에 해당한다." 솔직히 "또 매슬로우야?"라며 읽기 시작했다. 매슬로우 욕구이론은 단순해 보였기 때문이다.


- 자아실현 욕구 (5단계)

- 존중 욕구 (4단계)

- 소속과 사랑 욕구 (3단계)

- 안전 욕구 (2단계)

- 생리적 욕구 (1단계)


하위단계가 충족되면 상위단계 욕구가 발현되어 5단계까지 간다는 이론이다. 책에서는 4단계를 '인정'이라고 했는데 '존중', '존경', '자존감'등 여러 가지 단어로 번역된다. 그러고 보니 4단계에 관해서는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걸까? 영어 자료를 찾아봤다.

매슬로우 욕구이론 5

Esteem presents the typical human desire to be accepted and valued by others.

(타인에게 인정받고 평가받고자 하는 전형적인 욕구)


 4단계의 SELF-ESTEEM(자아 존중감)을 잘 설명한 문장을 발견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의문은 더욱 커졌다. "4단계 욕구가 없을 수가 있어?" 다르게 해석하면 1~3단계를 충족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말 그럴까? sex와 sleep이 1단계다. 20대 초반 26%만 연애 중이라는 기사 제목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는 심리적 불면증과 노동에 지친 수면부족이 공존한다. 2단계에서 말하는 안전이란 '예측 가능한 상황' 또는 '통제 가능한 미래'를 뜻한다. 불안정한 고용, 노후대비, 출산율 감소, 부동산, 정치 경제적 불안 등은 불안장애에 최적화된 환경이다. 3단계 소속감과 사랑?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 하지만 모두가 4단계를 갈망한다.



충족했다는 착각

 매슬로우 욕구이론을 처음 접하면 1~3 단계를 충족했다고 착각한다. 영양실조가 없고 길에서 총을 맞지 않는다면 1~2단계 통과. 가족이 있고 학교나 직장에 다닌다면 3단계도 통과. 하위 단계를 100% 충족시킬 수는 없다. 80%만 충족해도 다음 단계를 갈망한다. 하지만 50%도 충족되지 않은 이들이 4단계 문턱에 서있다. 매슬로우 욕구이론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하위 단계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다음 단계 욕구가 발현된다. 둘째, 다음 단계에 나아가지 못하면 하위에서 욕구를 충족시킨다. 자신이 월반했다는 착각은 모든 하위 욕구를 착취하기 시작한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3단계에서 버텨내겠지만 기반이 약한 이들은 한 번에 무너진다. 대량으로 소실된 욕구가 긴급수혈을 요구하여 '도파민'이 등장한다. 야동, 흡연, 폭식, 음주, SNS, 틱톡, 유튜브에 중독될 확률이 급격히 높아지며 불안, 나태, 분노 따위를 유발한다. 도파민 중독에 빠지는 진짜 이유 중 하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충족했다는 착각은 유지될 거라는 착각을 동반한다. 연고지에서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안정적인 학창 시절을 보냈다면 1~3단계는 프리패스다. 하지만 타지 생활과 직장 내 갈등은 3단계를 한순간에 박살 낸다. 고용불안과 물가상승이 2단계를 위협하며 초식남과 초식녀의 야근은 1단계를 무너트린다. 매슬로우가 진리라는 주장이 아니다. 아래층이 무너지면 위층이 무너지는 이치다.


 4단계를 충족했다는 착각도 바로잡아야 한다. 매슬로우는 하위 단계의 충족을 전제로 한다. 직장에서 인정을 받더라도 업무에 치여 3시간만 잔다면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수입은 높은데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사람이 되자는 말이 아니다. 충족했다고 확신했던 단계를 돌아보자는 의미다. 우리가 나태한 이유는 못나서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해서다. 같은 단계에서 맴도는 이유 역시 못나서가 아니라 하위 단계가 부실해서다.



사회적 측면

 <인정욕구>에서 말하는 5단계(자아실현의 욕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영감을 표현하고 싶다.

- 내가 느낀 감동을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다.

-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다.

- 감동을 전하고 싶다.

- 나의 능력이 어딘가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 인정해 주고 성숙해지고 싶다.


 5단계에 도달한 이가 많을수록 건강한 사회다. 문화와 예술,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는 5단계의 산물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단군정신도 5단계의 사상이다. 어쨌든 현재 우리나라 구성원은 4단계에 쏠려있다. 4단계의 핵심은 '인정'이다. 그렇다면 인정은 누가 해주는가? 인정받고 싶은 인간은 타인을 인정하는 것에 인색하다. 서로가 경쟁자여서 상대를 인정하면 손해를 본다고 여긴다. 립서비스를 하는 정도에 그치거나 극소수의 특출난 4단계만 인정을 받는다. 서로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5단계로 들어가는 인구가 급감한다. 결국 인정을 나누는 세력(5단계)이 감소한다.


 각박한 사회는 칭찬을 하지 않는다. 고도화된 사회는 구성원을 눈을 높여 웬만한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도파민 중독이 많아질수록 문화와 예술을 찾는 인구보다 빠르고 단순한 쾌락을 좇는 이가 늘어난다. 5단계로 도약하려는 문화와 예술은 무관심 속에 사라진다. 인정받지 못한 4단계 생산자는 1~3단계 중 한 곳이 부러져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그룹에 편입된다. 늪에 빠지는 것이다.


 "칭찬은 고양이도 춤추게 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상대를 기분 좋게 하자는 말처럼 들린다. 립서비스를 하라는 뜻일까? 격려와 인정의 진정한 힘은 대상의 능력을 실제로 업그레이드한다는 점이다. 유튜브나 브런치를 해봤다면 공감할 것이다. 조회수, 좋아요, 댓글이 노동의 원동력이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도 영상을 계속해서 만들고 글을 꾸준히 쓰면 '실제' 능력이 상승한다. 이것을 터부시 하는 부류가 많다. "인정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만 인정해 준다."라는 능력주의사상은 모두에게 손해다. 성장하는 사람이 없으면 '인정받을 자격을 갖춘 사람'은 적어진다. 종국에는 재능의 양극화가 만연해져 아무도 노력하지 않는다.


 정치 사회적 관점도 중요하다. 여유 있는 교육을 표방했던 일본의 '유토리 교육'은 2등도 인정하고 꼴등도 인정했으나 실패했다. 이것은 4단계의 인정과 다른 성격을 지닌다. 인류애, 이상주의,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는 인정으로써 '평안'을 지향하는 인정이다. 정치적 슬로건에 배신당한 인정도 있다. "서로를 인정하여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자!", "소수를 인정하자!" 모두가 알겠지만 현실은 참혹하다. 슬로건에 배신당한 부류는 냉소적으로 변하거나 회의론자가 되었다. 솔직히 나도 그중 하나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BTS나 손흥민정도가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4단계에서 말하는 일반 보편적 인정까지 잃은 것이다. 미래의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현재의 자신이 누구도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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