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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Dec 03. 2023

독서 백열다섯 권째 -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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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네이션> - 애나 렘키

 도파민은 쾌락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로만 알려져 왔으나 도파민 중독이 대중적 관심을 갖게 되며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현대사회의 과도한 풍요가 도파민 중독을 가져왔다. 핸드폰 터치 몇 번으로 문 앞까지 배달되는 음식. SNS, 숏폼, 야동, 약물의 접근성 등이 만연하여 쾌락 중독을 부추겼다. 쾌락이 행복이라는 잘못된 공식이 자리잡지만 우리는 인식하지 못했다. 이 책은 쾌락의 대가가 고통이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에세이로 착각할 만큼 가볍다. 동기부여 측면에서 보자면 웬만한 자기 계발서보다 낫다. 멀티태스팅의 단점, 집중력 부족, 우울과 불안의 원인이 도파민 중독에 있다는 점을 납득한다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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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끄기의 기술> - 마크 맨슨

 가벼운 심리 치료 서적으로 예상했는데 철학책이었다. 학문적 접근보다 저자의 철학에 중점을 둔다. 작가는 거침없는 글투로 유명한데, 그것을 보여주려는 듯 일반적인 번역서와는 문체가 다르다. 장점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아쉬웠다. 모국어에 감춰진 미묘한 센스와 비속어는 100% 번역되기 어렵다. 때문에 대단한 소리를 하는 것도 아닌데 건방지기까지 하다는 평이 있다.


 현대의 독자들은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서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답습하는 행위를 철학으로 규정하곤 한다. 과거의 철학자가 어지간한 사유를 종결했음은 사실이나 현대의 철학을 외면할 이유는 못된다. 우리가 알고 있고 철학의 대다수는 일기이자 편지이며 에세이에 지나지 않았다. 저자가 자신만의 철학을 주장하는 태도가 좋았다. 후반부 사랑을 논하는 부분은 지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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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기술> - 데런 브라운

 이 책도 철학책이다. <신경 끄기의 기술>보다 학문적 성향이 강하다. 스토아와 에피쿠로스를 중점으로 폭넓은 철학을 다룬다. <신경 끄기의 기술>도 그렇고, 철학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을 위해 가벼운 제목이 유행인듯하다. 저자는 스토아학파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객관적 관점을 잃지 않는다. 심리학과 정신질환 연구의 뿌리가 철학이라는 증거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다정한 말로 위로해 주는 책도 좋지만 정면으로 부딪히는 선택도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F)은 전자가 좋겠지만 이성적 성향이 강하다면(T) 후자 쪽이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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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움베르토 에코

 추리소설로 알았는데 종교소설이었다. 시중에는 두 권으로 나뉜 버전이 많지만 내가 대여한 책은 900페이지가 넘는 단권이었다. 30페이지 즈음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히스토리언>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섞어 놓은 듯한 난해함.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여러 번 있었다. 그래도 읽었다. 처음에는 각오였지만 이제는 경험의 여향이 더 크다. 읽어내면 남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투덜거리며 읽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책의 메시지는 선명해진다. 이러한 책들은 인용될 확률도 높아서 독서 시야를 넓혀준다. 어려운 책의 완독 경험은 난해한 책을 대면할 때 불안감을 덜어준다.


 암흑시대로 불리는 중세 유럽이 배경이다. 이단과 종파 간의 갈등이 정치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없으면 동태눈깔로 읽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짧은 독서경력을 탓하며 합리화했지만 이제는 전진해야 할 때가 아닐까? 인터넷 서점에 달린 후기를 읽어보면 재밌게 읽었다는 평이 많다. 한때는 그들의 말을 지적 허영심이나 오타쿠의 특성으로 치부했는데, 지금은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취향의 차이라는 핑계도 한계다. 이런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날이 올는지 의구심이 들지만, 언젠가 이 글을 보며 "그땐 그랬구나."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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