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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Jan 20. 2024

행복을 선택하는 심리학 실험

경험하는 자아, 기억하는 자아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강조한 행복은 우리 내면에 작용하는 두 자아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선택하는 어떤 행동은 훗날 '기억하는 자아'를 만족시킬 순 있지만, 그 순간에는 전혀 즐겁지 않아서 '경험하는 자아'는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기술>에 알기 쉬운 설명이 있다.


친구와 놀이공원에 가는 대신 아픈 친척을 돌보기로 했다. 그건 가장 덜 즐거운 선택이고 경험하는 자아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기억하는 자아에게는 그날 오후에 대한 더 좋은 추억을 제공하고, 심지어 우리가 삶에서 실천해 온 일과 관련해 더 큰 행복감을 줄 것이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쾌락을 절제하자!"는 고전적인 메시지로 보이지만 실험 과정을 보면 간단하지 않다. 카너먼이 쓴 <생각에 관한 생각>에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실험 1>

1. 실험자들은 인상을 찌푸릴 만큼 차갑긴 하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닌 냉수에 손을 담그고 있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2. 물에 담그지 않은 다른 손으로는 자신이 경험하는 고통의 정도를 키보드 화살표를 움직여 표시했다.

3. 1분이 지난 후 실험자들에게 따듯한 수건이 제공됐다.


카너먼의 실험

<실험 2>

1. 실험 1이 끝나고 7분 후, 손을 바꿔서 실험 1의 과정을 반복했다.

2. 차이점은 1분 -> 1분 30초.

단, 처음 1분은 실험 1과 같은 온도로, 나머지 30초는 1도 높은 온도로 진행했다.

3. 참가자 대다수가 기록한 고통의 정도는 실험 1보다 낮았다.


<실험 3>

1. 다시 7분이 지난 후, 참가자들은 실험 1과 실험 2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실험 1) - 냉수 60초 견디기

(실험 2) - 냉수 60초 견디기 + 1도 '높은' 냉수 30초 견디기

2. 참가자의 80%는 두 번째 실험을 반복하길 원했다.


 직관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다. (60초 고통)보다 (60초 고통 + 30초 덜 고통)을 선택한다고? 카너먼은 결정효용과 경험효용의 차이로 설명한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실험 3 시작점)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실제 경험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는다. 우리는 소설가처럼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좋은 결말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경험하는 자아는 30초 늘어난 시간으로 실제로는 더 불편했지만, 느긋하게 끝나는 실험 2를 더 편안하게 기억한다는 말이다.


 카너먼은 일정시간 교향곡을 듣다가 마지막 순간에 디스크 잡음을 들은 사례도 언급한다. 위의 실험과 반대되는 상황이다. 결과는 반대지만 과정은 동일하다. 기억하는 자아가 경험하는 자아(잡음을 듣기 전까지 즐겁게 음악을 감상하는 경험)를 무시했다. 나쁜 결말이 경험 전체를 망쳤다. 무대 공연에서 피날레에 공을 잔뜩 들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공연 속 장면 하나하나는 경험하는 자아를 만족시키지만, 공연이 얼마나 재밌었고 만족스러웠는지는 기억하는 자아가 판단을 내리는 피날레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많은 상업 뮤지컬이 메가 믹스 기법을 도입하는 이유라고 한다.


· 메가 믹스 기법 - 출연진이 전부 무대 위로 올라와 가장 기억에 남는 뮤지컬 넘버의 재밌는 후렴구를 합창하거나 관객에게 다가가 다 함께 춤을 추게 만드는 방법.




 많은 생각을 안겨준 실험이었다. 실험은 우리에게 정답을 말해주진 않는다. 어느 자아를 선택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놀라운 점은 기억하는 자아가 경험하는 자아를 무시했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기억 왜곡이다. 뇌과학 책을 보면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제멋대로인지 알게 되는데, 30초 더 긴 고통을 선택하다니 반박할 수가 없다. 과거미화나 추억보정도 비슷한 원리가 아닐까 싶다.


 고진감래를 과학적으로 설명한 실험이기도 하다. 다이어트나 수험생활은 너무도 고통스럽지만 성공한 사람이 불행을 느낄 수는 없다.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는 '작은 성공의 반복'도 같은 원리로 보인다. 기억하는 자아가 경험하는 자아를 무시하기 때문에 다음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 것 아닐까? 참가자들이 실험 2를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글자를 읽는 경험은 화려한 CG가 가미된 영화를 보는 경험보다 즐겁지 않다. 하지만 대다수의 기억하는 자아는 독서를 선택한다.


 경험하는 자아의 집중력은 고작 3초라고 한다. 최근 도파민 중독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숏폼 콘텐츠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지식을 마케팅에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인생으로 가져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어렵다는 건 안다. 하지만 실험 결과가 말해주듯 행복은 기억하는 자아가 결정한다. 우리는 여행이 종료되면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계약을 하고서도 매일 아침 여행 가방을 꾸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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