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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Feb 13. 2024

인색한 감사 인사

- 고맙습니다

 삼촌의 보험료를 납부하려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고객센터에 전화를 할 때마다 '감정노동'을 떠올린다. 한창 이슈가 되었던 탓도 있지만 나도 비슷한 업무를 해본 적이 있어서다. 그래서 좀 더 신경이 쓰인다. 퉁명스럽게 말하지 말자. 감사 인사는 잊지 말자.


"고맙습니다."

"네?... 아... 네! 감사합니다!"


 찰나였지만 상담원은 말을 더듬으며 당황스러워했다. 공익광고에서 보던 오글거리는 상호작용은 아니었다. 허를 찔린듯한 리액션이었다. 그럴만했다. 삼촌의 보험은 실랑이가 잦은 보험이었다. 대부분의 고객은 전화를 하기 전부터 마음이 전투적이니 적합하고 친절한 응대에도 감사 인사를 하지 않게 된다. 나 역시 민감한 문의였다면 달랐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감사 인사를 건넨 내가 대견스러웠다. 나이를 먹어서 변한 걸까?


 20대의 나는 감사 인사에 인색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정당한 값을 지불했고, 상대는 보수에 맞는 노동을 하는 것인데 내가 어째서 감사까지 해야 되냐는 논리였다. 합리적이라고 믿어서 고치지 못했다. 변하게 된 계기는 '직업의 귀천'에 관한 이야기를 되새겨 보면서였다. 보수는 노동에 대한 가치일 뿐 사람의 가치가 아니라는 점. 감사인사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인간적 고마움이지 추가 요금이 아니라는 점. 나를 변하게 만든 결정적인 예시도 있었다.


"지불한 가격보다 후한 서비스를 받으면, 지불한 가격보다 후한 감사 인사를 건넬 것인가?"


 식당에서 서비스 반찬을 제공받는 경우라면 대부분 감사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예상을 웃도는 친절, 맛, 위생, 인테리어 따위에는 감사해하지 않았다. 핵심은 '예상을 웃도는'이다. 이러한 관점을 예시에 대입하면 "직원분이 너무 친절하시네요!", "시설이 굉장히 좋아요!", "음식이 너무 맛있어요!"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낯부끄러운 칭찬 또는 입발린 아부라는 생각에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성격 탓도 있겠지만 감사 인사에 인색한 것이 분명했다. 여전히 적극적인 표현은 어렵지만 의식해서 감사 인사를 건넨다.


 그렇다면 '예상을 밑도는'서비스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20대에는 정의구현 명분으로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감사 인사는 건넨다. 요리와 서빙 행위 자체에 감사한다. 선을 넘는 불친절까지 참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말 그대로 행위에 대한 감사다.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불친절한 직원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면 큰일이 난다고 믿었다. 감사는 감사고 컴플레인은 컴플레인이다. 컴플레인의 일환으로 감사 인사를 건네지 않는 선택은 분란만 키우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감사 인사 하나에 무슨 생각이 이리 많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에 따라서 많은 변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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