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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Feb 23. 2024

금융치료의 두 가지 뜻

- 신조어의 공간 차이

 2024년 기준 신조어 금융치료는 두 가지 뜻이 공존한다. 첫째는 급여나 후원으로 자신 또는 타인을 응원한다는 의미다. 둘째는 타인에게 벌금이나 손실을 유발해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것. 전자는 '응원', 후자는 '응징'. 같은 단어가 상반된 의미를 지니는데 혼동이 없을까?



응원의 금융치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을 비판하는 영상에서 "금융치료를 받아야 해."라는 댓글을 보고 무슨 소린가 싶었다. 내가 알던 금융치료는 응원이었기 때문이다. 2030에게 금융치료가 유행하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급여를 치료로 풍자한 것이다. 일부 중소기업의 부당한 업무 지시를 꼬집은 후 월급날 통장을 보며 만족해하는, 다시 말해 이거라도 없으면 이딴 회사 뭐 하러 다니냐는 일종의 풍자 장치였다. 둘째는 인터넷 방송의 영향이다. 스트리머(방송진행자)가 게임에서 패배하거나 기운이 없을 때 후원을 하여 기쁘게 만드는 행위도 금융치료였다. (후원이란 별풍선, 도네이션, 슈퍼챗.) 스트리머는 후원을 받으면 춤, 노래, 재밌는 밈 등 유쾌한 리액션을 했기 때문에 치료를 연상케 했다.

응원의 금융치료 설명 자료



응징의 금융치료

 응징의 금융치료는 부동산, 주식, 정치 댓글에 많았다. 특이한 점은 2022~2023년 이전에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는 것인데, 앞서 언급한 '응원의 금융치료'가 유입되어 변형되었을까? 응원의 금융치료가 젊은 층에게 하향세에 접어든 신조어임을 감안하면 근거 없는 추론은 아닌 것 같다. 아니면 나의 편식일지도 모른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정치 시사 주제는 클릭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응원의 금융치료 사용빈도는 줄어드는 반면 응징의 금융치료 활용은 늘어나는 추세다. 머지않아 응원의 의미는 사라질 수도 있다.



혼동이 적은 이유

 "돈쭐을 내주겠다."라는 신조어가 있었다. '돈' + '혼쭐 내다'의 합성어인데 예를 들어 양심적으로 장사하는 사장님의 일화가 알려지면 그 가게에 주문을 하여 매상을 올려준다는 의미다. 이 신조어는 '혼쭐 내다'의 합성어여서 오해하기 쉬울 것 같았는데 혼동하는 사람은 적었다. 해당 신조어가 빈번하게 사용되는 공간일수록 유사한 정보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특정 '드립'을 이해하냐 그렇지 않냐를 통해서 대상을 구별하는 시도가 빈번하다. 일베용어, 페미용어 따위가 그러한 태생을 지녔다.


 금융치료가 혼동이 적은 이유도 각자 활동하는 공간이 한정적이어서 아닐까? 인터넷은 무한한 바다가 아니라 수 없이 분할된 수영장일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사이트만 방문하며 알고리즘에 갇혀 있으니 한 단어가 상반된 의미를 지녔음에도 언급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세대차이로 단정 짓기도 모호하다. 3040 사이에는 금융치료를 각자 다르게 알고 있는 경우도 많으며 최근의 신조어는 같은 세대도 모르는 일이 허다하다. 이것을 뭐라고 해야 할까? 공간차이? 인터넷의 순기능 중 하나가 소통인데 요즘 보면 역효과가 나는 것 같다. 혼동이 적은 이유가 소통의 부재라니 아이러니다.

세대차이 공간차이


 금융치료처럼 다른 의미로 활용되는 단어가 많아질수록 담장이 허물어졌을 때 혼동은 배가 될 것이다. 고리타분한 소리지만 책은 그나마 담장이 낮다. 저자가 금융치료라는 단어를 사용하려면 두 가지 의미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몰라도 출판사에서 지적할 것이다.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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