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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Feb 22. 2024

독서 137 권째

- 127~137

127~129

<3분 철학> - 김재훈, 서정욱

 만화 형식의 책이다. 서양 고대 철학편, 서양 중세 근대 철학편, 서양 현대 철학편 3 권으로 구성되었다.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를 간략하게 다룬다. 철학 역사의 초등학생 버전에 가깝다. 나의 수준에는 맞지만 철학책으로 추천하기엔 내용이 짧다. 만화책으로 봐도 될 정도다. 부실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철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면 먼저 읽어보길 추천한다. 그림도 귀엽다.


3분 철학



130

<옷장 속의 세계사> - 이영숙

 124번 책 <빵으로 읽는 세계사>와 같은 저자다. 독서를 시작하며 배경지식의 중요함을 알았지만 짧은 시간에 메울 수 없었다. 특히 역사책이 어려웠다. 공부하듯 독서를 했지만 흥미가 떨어지고 발전도 더뎠다. 차선책은 어린이도서와 주제별 역사였다. 옷의 유례를 역사를 통해 읽으니까 이해도 쉽고 집중도 잘 됐다. 단점은 역사의 큰 흐름이나 사건의 우선순위 구분이 어렵다는 것인데 어차피 나는 아는 게 없다. 조각을 모으다 보면 큰 그림이 보일 것이다.



131~134

<철학 통조림> - 김용규(글), 이우일(그림)

 4권 구성이다. 1권과 2권은 도덕을 위한 철학 통조림. 3권과 4권은 지식을 위한 철학 통조림이다. 2권까지는 굉장히 만족했다. 수준에 맞고 내용도 유익했다. 하지만 3권부터는 어려웠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도 다르다. 1, 2권은 자녀에게 철학을 설명하는 구성인데 3, 4권은 작가의 소설 속 등장인물이 나온다. 3권부터는 지식 철학이다. 윤리학 등을 접하며 철학을 흥미롭게만 보았는데 한 발 물러서게 되었다. 도덕 철학은 학력과 지능에 무관하게 이입할 수 있지만 지식 철학은 달랐다. 기호를 사용하는 새로운 수학? 뭐 그런 느낌이었다. 철학 모두가 어렵다는 말은 선입견이 맞지만 분야에 따라서는 선입견 이상인 듯하다.


철학 통조림


135

<식탁 위의 세계사> - 이영숙

 시리즈가 있나 보다. 도서관 이용의 단점인데 같은 묶음도 다르게 분류되곤 한다. <빵으로 읽는 세계사>는 3층에 있었는데 이 책은 2층에 있었다. 책을 사서 본다면 마케팅 영향 때문에라도 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도서관은 특정 작가의 대표작만 없거나 무명작가의 전집이 있는 경우도 많다. 비용 문제와 도서 기부의 영향일까? 문득 서점만 이용하는 사람과 도서관만 이용하는 사람이 바라보는 책의 풍경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서점 쪽이 읽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도서관도 서점 매대 스타일을 차용하면 어떨까. 쓰다 보니 <식탁 위의 세계사> 이야기가 없다. <옷장 속의 세계사>, <빵으로 읽는 세계사>와 비슷한 형식이며 배경지식이 없어도 쉽게 읽힌다. 추천.



136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 요나스 요나손

 작가의 스타일을 이해한 독서였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고 난 후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을 선택한 이유는 후속작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책은 어떤 느낌일까 하는 마음에 골랐다. 등장인물 케냐 마사이의 올레 음바티안에게서 100~101세 노인 칼손을 보았다. 주변인물을 배치하는 스타일도 비슷했다. 분명하진 않지만 전작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부분도 있었다.


 독서 500권 즈음 도달하면 나에게도 선호하는 작가가 생기지 않을까? 독서를 시작하며 꼭 느껴보고 싶은 감각이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나의 감정이 열등감과 허영심일지도 모르겠으나 진심으로 좋아하는 작가를 말할 수 있게 되면 뿌듯할 것 같다. 한편으론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나는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에게 강한 팬심을 갖거나 동경하지 않는 편이다. 소크라테스 이순신처럼 막연한 위인은 존경한다 말하겠지만 살아있는 인물은 거의 존경하지 못한다. 기억력 문제도 있다. <침묵의 봄>과 <팩트풀니스> 작가를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찾아보니 레이철 카슨, 한스 로슬링이다. 안타깝게도 두 분 모두 고인이 되었다.


요나스 요나손의 책


137

<공정하다는 착각> -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에서 유명세를 떨친 작가의 책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던 시기는 독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음에도 이해하기 쉽고 기억에 남는 것이 많았다. 그간 쌓인 독서량이 자신감을 주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정의'는 일반적인 도덕 가치관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반면 '공정'은 정치 사회 배경지식이 필수였다. 나름 노력해서 <능력주의의 부작용> 글도 써봤지만 난해한 부분이 많았다.


 우리나라보다 정치 분열이 심각하다는 미국의 이야기. 대졸 VS 고졸이라는 다소 자극적 대립인데 대학 진학률 70%를 웃도는 우리나라에는 다르게 적용해야 할 듯하다. 굳이 따지자면 명문대학 VS 일반대학 또는 대기업 VS 중소기업 정도일까? 미국의 엘리트는 세계화와 IT를 외치며 엄청난 부를 쌓았다. 중국과 동남아, 이제는 아프리카에 진출하며 이민자도 수용했다. 미국인 노동자(블루칼라)는 인건비 경쟁에서 밀리고 유학생 기반의 세력에게 사무직(화이트 칼라)도 내주어야 했다. "미국은 왜 가난한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하지?" 전부는 아니겠지만 납득되는 이유였다. 과거 인종차별의 원인도 불황 속 흑인의 경제 참여가 핵심이었다. 동양인 차별과 중동 배척이 혐오와 공포만은 아닌 것이다. 그들의 자리를 꿰찬 이들 중에는 과거에 일자리를 가질 수 없었던 성소수자와 장애인도 많다. 미국의 PC(Political Correctness - 정치적 올바름) 혐오를 흑인 인어공주만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능력주의의 단점 중 하나는 승자의 퍼포먼스와 패자의 자괴감이다. 책에서는 오바마 주장하던 'YOU CAN DO IT!'이 나온다. "당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이러한 발언은 공정할 때 합당하다. 미국의 엘리트는 불공정이 만연함에도 공정 가스라이팅을 했다. 공정한 환경임에도 성공하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없다. 승자는 공정한 경쟁에서 이겼으니 슈퍼카 사진을 업로드하며 SNS 퍼포먼스를 즐길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승자는 패자에게 이렇게 말하며 어떠한 죄의식도 갖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은 너의 잘못 아님?", "억울하면 공부를 하세요!" 패자는 어떻게 반격해야 할까? 스스로를 반성하며 책상으로 돌진할까? 인간의 분노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그냥 트럼프를 찍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분명 비슷한 현상이 있다. 갈라치기, 혐오, 증오심. 생각해 볼 문제다.


마이클 샌델 - 공정하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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