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버스 타기

- 아오, 힘들어 -

by 공황돼지

나는 진료 날이 가까워질수록 불안이 커지고 생활리듬이 깨지는 스타일이다. 병원에서 한 거라곤 수다가 전부지만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 사실 치료는 병원에 도착한 시점에 90%는 끝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버스를 타고 시간 맞춰 병원에 도착하는 과정이 치료다. 상담과 약은 거들뿐이다. 병원이 집 앞이었거나 누군가 동행했다면 치료라고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병원 가는 날 '혼자 버스 타기 훈련'을 한다.

병원 가는 날이었다. "또 꾸역꾸역 갔다 오면 한동안 괜찮겠지." 병원에 가려면 좌석버스를 타야 한다. 집에서 터미널까지는 택시를 탔다. 택시에서 미약하게 불안감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했다. 터미널에 도착. 버스에 타자마자 앉을 곳을 탐색했다. 보통 나는 좌측에 앉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날은 앉을만한 자리가 없어서 우측에 앉았다. 여기서부터였다. 뭔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아서인지 약간 덥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이마에서 땀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땀이 많은 체질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땀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났다. 식은땀이었다. "아, 그것이 온 것인가." 나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울 준비를 해야 했다.

땀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흐르는 상황.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주변을 신경 쓴다. 지금은 타인의 시선에 저항력이 생겼지만 당시에는 그러지 못했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더 많은 땀을 생산했다. 그리고 두근거림도 시작되었다. 급기야 속도 울렁거렸다. 누가 봐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다. 온 신경을 집중했다. "괜찮다. 나는 괜찮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혼자만의 사투를 벌였다. 딱 20분만 버티면 나의 승리였다. 그런데 도착 3분을 남기고 패배했다. 버스에서 오바이트를 한 것이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쇼크'다.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그 후로 버스 타기는 도전이자 치료였다. 트라우마가 된 오바이트는 예고 없는 생리현상과 발작 따위 불안을 증폭시켰다. 어쨌든 다시 버스에 타야 했다. "아무렇지 않다!"라는 경험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안되면 혼자서는 버스를 못 타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불안장애가 무서운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혼자 버스 타지 못하는 사람'이 될 거라는 불안은 또 다른 불안을 불러온다. 악순환이다. 어쨌든 나는 다시 버스에 탔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위기는 있었지만 무사고로 도착했다. "거봐, 아무렇지 않잖아?" 버스에서 내려 스스로를 칭찬했고, 그것은 최고의 치료였다.

이런 이야기는 부끄럽기도 하고 그때 기억이 떠올라 유쾌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글로 남기는 이유는 이것도 치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담 중 자신을 감추지 말고 내려놓자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정신이 건강한 글쓴이 흉내를 냈다면 스스로를 감추기 위한 글을 썼을 것이다. 공황장애를 알리고 공유한다는 거창한 이유를 내세우지만 결국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이들에게 조심스레 추천해 본다. '진짜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은 좋은 약이 되어줄 것이다. 글쓰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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