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와 미래의 통로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살고
평안한 사람은 현재에 산다
- 노자 -
최근 읽었던 책 <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남긴 불안> 첫 장에 나왔던 말이다. 뻔한 결론으로 들리겠지만, 읽기 전과 후 차이가 생각보다 많았다. 좌뇌형 인간은 분석적, 계산적, 이성적 사고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합리적 판단을 내린다. 선택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통로'였다. 좌뇌형 인간인 나는 분석과 예측 통로를 우울과 불안 통로와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왜 불안하고 우울한가." 끊임없이 분석하고 예측했다. 이성적 인간이라면 답을 찾아낼 거라는 믿음은 신앙처럼 견고했다. 답이 나오지 않자 더 분석하고 더 예측했다. 경우의 수 하나는 둘이 되고 넷이 되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지치기 시작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지식이 모자라서 그래.", "분석과 예측을 더 철저히 했어야 해." 이 현상을 다르게 표현하면, 불안이 불안을 낳다가 우울해지는 것이다. 불안은 분석해서는 안된다. 우울도 예측해서는 안된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좌뇌형 인간이 이걸 납득하지 않을 수 있을까? 논리적이고 명확한 사실이다. 간단한 이치를 망각한 이유는 통로를 맹신했기 때문이다. 그곳으로 들여온 정보는 평생 이성적 판단의 근간이었다. 성취와 가치관 형성에 늘 함께하던 통로를 의심할 수 없었다. 그곳은 늘 정답이 있었고,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이해하며 나의 성장을 돕는 통로였다. 통로가 꼭 하나여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고 그곳이 생존의 유일한 길목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불안 장애를 겪는 사람에게는 비슷한 사례가 많다. 예를 들어 택배나 배달음식을 기다리며 겪는 불안이다. "배달하는 사람이 내 옷차림을 보고 속으로 욕하면 어쩌지?" 차려입진 않아도 구색을 갖춘다. "초인종 소리를 한 번에 못 들어서 배달원이 화를 내면 어쩌지?" TV소리를 줄이고 현관과 인터폰에 집중한다. (나는 현관문을 조금 열어 둔다.) 이성적인 통로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답이 없는 통로, 즉 버려야 하는 통로다.
배달 후도 그렇다. 배달원에게 불친절을 느꼈던 통로는 정상이다. 하지만 "내가 만만해 보여서 무시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우울한 감정이 그렇다. 면접에 떨어진 원인 분석을 가정해 보자. "가정환경 때문이야.", "성별 때문이야.", "면접관 관상부터 글러먹었어."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통로와 우울을 유발하는 통로를 공용하면 뒤섞일 수밖에 없다. 성차별은 존재하고 없어져야 한다. 이성적 통로가 맞다. 하지만 면접에서 떨어진 이유가 오직 성별 하나라는 몰입도 이성적 도출일까? 좌뇌형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안다. 그것이 분석과 예측으로 가는 통로인지, 우울과 불안으로 가는 통로인지.
자신이 이용하려는 통로가 우울인지 불안인지는 3초면 자각한다. 현재를 살아가라는 말은 과거와 미래를 망각하라는 뜻이 아니다. 과거의 분석과 미래의 추측은 이성적 통로로만 운반하고 현재에 집중하라는 의미다. 감정적 통로가 필요한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자신이 감정의 통로를 이용하고 있다는 자각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