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타는 법을 찾아봤다.

- 공황장애 기록

by 공황돼지

"아침 9시까지 터미널로 와."


배경은 덮어두고 나는 무조건 9시 전에 도착해야 했다. 상대도 내가 공황장애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터미널까지 이동하는 행위와 공황장애의 접점까지 헤아려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서둘러 교통편을 검색했고 선택지는 기차와 좌석버스로 좁혀졌다.


기차를 이용한 총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 좌석버스는 30 분도 안 걸렸다. 몇 배나 비싸고 3배 느린 기차가 마음에 쏙 들었다. 익숙했기 때문이다. 정기적인 병원 나들이가 기차였다. 날려버릴 시간과 비용은 불안을 회피하는 대가라고 여겼다. 일본에서 돌아올 때도 그랬다. 비행기표가 있었는데도 배편을 알아봤다. 누군가의 불안 회피 비용은 월급이나 연봉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고통이 크다는 방증이지만 탈출이 늦어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나는 찬스를 얻었다. 아침 9시까지 도착할 수 있는 기차 편이 존재하지 않았다.




불안의 원인은 다양하다 못해 무제한이다. 버스만 하더라도 그렇다.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려 버스에서 오바이트를 했던 일이 있다. 한동안 버스 타는 게 불안했지만 극복했다고 자부한다. 이번 버스는 오바이트랑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 나이 먹도록 버스 타는 법도 모르네."라는 버스 운전수와 승객들의 시선을 의식한, 수치심에서 오는 불안이었다.


승차권을 구매하는 버스는 많이 타봤지만 시내버스 경험은 서른 번도 안 될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걸어서 5분 거리였고 고등학교는 스쿨버스였다. 동네가 좁았기 때문에 친구 2~3명이 이동할 때는 오히려 택시가 저렴했던 탓도 있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싫어서 몇 정거장 정도는 걷는 편이었다. 그 결과, 버스 타는 법도 모르고 세상물정에 어둡다는 말에 수치심을 느낄법한, 그런 불안이 싹튼 것이다.


"토큰은 당연히 없어졌지? 회수권도 없어졌나?"

"TV 보니까 핸드폰으로 띡-띡- 찍던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거지?"

"편의점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했던 손님이 있었는데 아직도 그걸로 하나?"

"현금은 안돼?"


검색을 시작했다. 후불 교통카드와 모바일 티머니, 미성년자는 부모의 신용카드를 연동해 충전이 필요 없는 방식도 있었다. 현금을 받지 않는 시내버스가 시범 운영 중이라는 기사도 있었다. 어쨌든 내가 선택한 방법은 신용카드였다. 카드 뒷면에 payOn 혹은 "후불교통", "후불교통카드"라고 적혀있다면 기능이 내장돼있다고 했다. 최근에 발급했고 '정지 신청'을 안 했다면 작동할 것이라는 설명. 그래도 불안하니 현금도 준비했다.


다음 장애물은 결제하는 동안 벌어질 여러 가지 가능성이었다. 결제 위치를 못 찾아서 운전수에게 한 소리 들으면 어떡하지? 뒷사람이 답답해하면 어떡하지? 카드가 작동하지 않으면 현금을 내야 하는데, 돈은 어디로 넣는 거지? 거스름돈은? 갑자기 TV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화를 내는 운전수와 죄인처럼 서있던 주인공. 그리고 궁시렁대며 주인공을 흘겨보는 승객들.


유튜브에는 오만가지 영상이 있다. 시내버스 타는 Vlog를 찾아봤다. 제작자의 의도가 버스 탈 때 카드로 결제하는 방법이 아니어서였을까. '그 모습'을 포착할 수 있는 영상은 적었다. 버스 업체나 시기에 따라서 기기의 형태도 달랐기 때문에 확신할만한 단서가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기출문제라도 풀지 않으면 불안이 더 커질 것 같았다.


결전의 날. 버스정류장에는 한 사람뿐이었다. 모니터에 버스 도착 시간이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시간 정황상 그 사람은 같은 버스를 기다리는 게 분명했다. "내가 나중에 타면서 카드를 어디에 찍는지 보면 되겠구나!" 전쟁터는 작전보다 임기응변이 중요했다. 버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미세하게 두근거리는 가슴. 그런데 쓸모없는 계획이었다. 누가 봐도 카드 결제기처럼 생긴 녀석이, 누구라도 그냥은 지나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시설물이라는 게 그렇다. 모두가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제작 기준은 하한선일 수밖에 없다.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 "그것도 몰라?"라며 핀잔을 주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 말에 수치심을 느끼나. 그렇다면 그 사람이 늘어놓는 설교를 들어보자. "나 때는 말이야..." 실소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겨우 그런 일로 핀잔주는 사람의 인생철학 따위 듣고 싶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그 사람의 핀잔은 왜 그렇게 귀담아듣고 이해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게 뇌의 오류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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