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의 상실
진단서에 우울증이라고 쓰여있었다. 우울증 오진은 들어본 적도 없다. "역시 나는 우울증이 맞았어!" 세상이 시들어 보였던 의문이 풀렸다. 영화가 더 이상 즐겁지 않은 이유. 중독에 가까웠던 게임을 그만두려는 이유. 이성을 관찰하는 예리함이 무뎌진 이유. 그것 전부가 우울증 때문이라고 믿었다.
2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중학교 동창 두 명. A는 방송국 PD를 하던 친구였고, B는 중학교 영어 교사다. 대화는 대부분 이런 흐름이다. 나와 A가 넷플릭스, 유튜브, 아이돌, 게임 따위 주제를 늘어놓으면, 친구 B는 그게 뭐냐며 궁금해한다.
"아니, 아직도 그걸 안 봤어?"
"그걸 모른다고?"
"너는 무슨 재미로 사냐."
친구 B는 우리의 놀림에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메모를 한다. "그래서 뭐, 그거 제목이 뭐라고? 그렇게 유명해?" 사실 친구 B는 제자들과의 소통거리를 찾는 것이었다. 속사정을 모르던 나는 농담 하나를 보탠다.
"너는 당분간은 진짜 행복하겠다. 새로운 세계가 얼마나 많이 남은 거야."
눈치 없는 농담은 덮어두고, '당분간은 행복할 것'이라 말했던 이유를 되새겨봤다. 친구 B는 언젠가 추천목록 TOP 10을 소진할 것이고, TOP 11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분명 적어질 것이다. 이것이 내가 행복을 덜 느끼는 단서였다. 지옥을 견뎌낸 직장인이 주말에 치킨을 주문하고 아껴뒀던 영화를 보는 것은 행복이다. 아낀다는 의미는 소진된다는 뜻이지 않은가. 보고 싶은 영화가 단 한 개도 없을 만큼 소진시켰다면, 행복을 덜 느끼는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했다.
행복을 아끼자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행복의 상실'이 자연스럽다는 증거였다. "요즘 볼 게 없다.", "할만한 게임이 없다."라는 푸념이 백수들의 전유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10대 후반 로맨스 코미디 영화를 좋아했다. 미래의 여자친구를 상상하던 설렘 때문에. 그런데 연애가 뭔지 알아가자 관심이 식었고, 그들이 표현하는 로맨스가 실현 불가능한 나이에 접어들자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이세계물. 또는 전생물이라 불리는 판타지 소설과 웹툰. 처음은 중독에 가까웠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기피하는 지경이다. 모바일 게임의 비합리적인 결제 유도를 경험하면 흥미를 잃는 게 당연하다. 친구와 순수하게 주고받던 선물이 대가를 바라는 사회생활 눈치게임으로 변질되면, 선물 받는 경험은 행복에서 부담으로 바뀐다. 이처럼, 행복의 상실이 자연스럽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로맨스 코미디 영화에 흥미를 잃은 이유. 판타지 소설과 웹툰이 재미없는 원인. 선물이 부담스러워진 계기. 이 모든 것이 우울증 때문이라는, 착각 또는 함정이다. 조증이어도 기피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상실이 우울증 탓이라는 해석은 논리적이지 않다. 우울증만큼 논리가 통하지 않는 병은 드물다. 때문에 논리로 덜어낼 수 있는 짐이라도 확실하게 버려야 하지 않을까.
행복의 상실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우울한 기분은 누구나 느낀다. 더 이상 젊지 않은 거울 속 자신. 예상치 못한 건강검진 결과. 예전 같지 않은 신체와 두뇌. 이것들이 자연스럽다는 표현은 무례한 말이다. 하지만 사실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울증은 자연스럽게 오고, 자연스럽게 지나갈 때도 있다는 생각도 해봤다.
지식과 경험이 행복의 상실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지만 달리고 달린 결과가 제자리였음을 깨달았을 때. 정직한 사람이 손해라는 경험이 쌓일 때. 우울증이라 여기는 것 중 일부는, 사실 깨우침이었을지도 모른다. 공수래공수거를 온몸으로 깨우친 사람은 우울할까 행복할까. 그게 좀 다른 것 말고는 본질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우울증은 '행복의 부자연스러운 상실'이다. 사고방식의 문제가 아닌, 부정적 인지가 만들어낸 뇌의 오류를 의미하다. 아직 상실된 적 없는 행복을 마주해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우울증을 정신력으로 극복하라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모든 우울이 뇌의 오류는 아닐 수도 있다는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삶의 의욕이 줄어든 이유는 적당히 살아봤기 때문이다. 직업도 없고 돈도 없으면 누구라도 우울할 것이다. 환경 자체도 긍정적인 이벤트가 발생하기 힘든 구조다. 주말이 365일인데 주말이 즐겁겠나. 이게 뇌의 오류라고? 여기서 삶의 의욕이 차오르면 그게 더 오류 아니야? 자연스러운 상실과 부자연스러운 상실을 나누는 사고방식이, 짐을 덜어준다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