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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Nov 27. 2022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 초보 악플러 기록장

 악플러는 활동량이 많기 때문에 보이는 것보다 그 실체는 소수다. 반면 댓글을 달지 않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다. 조회수와 댓글 수를 비교해보면, 인기 있는 동영상은 99%가 댓글을 달지 않는다. 한 명의 악플러가 100명, 1000명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 처음에는 선플을 떠올렸지만 거짓 칭찬이 내키지 않아서 관뒀다. 차선책은 최대한 댓글을 남기는 습관이었고, 20년 넘게 댓글을 남기지 않던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굿!"

"잘 봤습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영상으로 어그로 끌면 좋나요?"

"와, 댓글들 상태 가관이다. 이러니까 우리나라가 안 되는 거야."


 처음에는 참여가 목적이었다. 50%만 댓글을 달아도 악플은 발굴하지 않는 한 볼 수조차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래도 막돼먹은 영상에 "잘 봤습니다."라고 말하기는 싫었다. 가치관에 반하는 내용도 그랬다. 스스로 떳떳했기 때문에 의구심은 없었다. 그러던 중 나와 비슷한 의견을 악플러라며 공격하는 댓글들을 보았다. 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립하는 가치관. 그들은 생각보다 다수였다.


 반칙을 일삼는 축구선수에 관한 영상이었는데, 스포츠맨십도 없고 동종업계 종사자를 배려하는 마음도 없어 보였다. "아니, 저래도 되나? 격투기야?" 그런데 칭찬하는 댓글도 있었다. "반칙도 경기의 일부고 실력이야. 저기서 반칙으로 안 끊었으면 졌을걸?" 페이플레이가 실력 부족이라고?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해했지만 끝끝내 껄끄러웠다.


"중립적인 댓글만 달자."


 간단한 규칙. 그런데 두 가지 조건을 붙이자 불가능에 가까웠다. 첫 번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두 번째는 의미 없는 댓글은 달지 않는 것. 거짓말이 아니면서 의미 있는 발언은 반드시 누군가를 자극했고, 그들은 나를 악플러처럼 대했다. 초반에는 다수의 편에 서있어서 문제가 적었지만, 점점 소수 쪽에 서는 빈도가 높아졌다.


 소수 쪽에 서야 했던 대표 콘텐츠는 '국뽕'. 한국의 장점을 강조하며 세계적 위상, 또는 외국인의 긍정적인 리액션을 다룬다. 국뽕이 나쁜 것은 아니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면 말이다. 불량 국뽕의 특징은 조작과 편향된 정보다. 사전에 합의된 외국인 인터뷰. 단점은 숨기고 장점만 다루는 방식. 조금만 검색해도 알 수 있는 거짓이 가득했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자랑스럽다며 고취되어 있었다. 그곳에 거짓 없고 의미 있는 댓글을 달아보았다. 매국노. 친일파. 공산당? 별소리를 다 들었다.


 나를 비난했던 사람들은 요즘에도 그런 반민족적 악플러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을까.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중국인, 일본인으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들에게 나는 악플러가 돼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가 났다. 더 공격적인 기분이 들기 전에 확인을 또 했다. 썸네일과 내용은 분명 일치하지 않았다. 인용된 원본 인터뷰까지 찾아봤는데 조작이 확실했다. 아니, 그것은 소설에 가까웠다. 내가 맞냐 네가 맞냐 따질 수 조차 없는, 흑과 백처럼 경계가 뚜렷했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뭐지? 그들을 공격하는 행위가 잘하는 짓일까? 초반에는 자주 멈칫했지만, 비슷한 경험이 반복되자 뇌를 키보드에 맡겼다.


 조금 내면으로 가보자. 정말 잘한 것일까. 국가적 관점에서, 또는 결과적으로 악영향을 끼친 주범은 나일 수도 있다. 해당 영상을 본 누군가의 애국심이 높아져 홍익인간의 재림을 실현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나의 심리상태는 어떠한가. 알량한 지식으로 계몽 흉내를 내며 우월감에 젖어있다. 국뽕을 의심 없이 믿는 연령대가 부모뻘이 많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그들은 진심으로 한국이 자랑스러워서. 영상 제작자를 의심하지 않아서. 순수하게 댓글을 단 것뿐인데, 나는 그들을 조롱하며 가르치려 한다. 그렇다면, 나쁜 것은 나라는 소린가.


 순수한 악플러는 사이코패스만큼 적을 것이다. 보통은 생물학적 아동이거나, 질투 또는 고집이 비틀어진 결과가 아닐까. 실제 겪었던 악플들도 그랬다. 시작점을 찾아가면 오해, 말투 지적, 가치관 차이가 원인이다. 그런데 왜 그러는 걸까. 전투민족이라서? 인터넷이니까? 다른 이유는 모르겠고 개인적으로 느낀 바 댓글 공격의 희열은 예상보다 중독적이었다. 옳다고 믿는 가치관을 눈치 보지 않고 내뱉은 적이 언제였던가. 비판받아 마땅한 자들 앞에서 능동적이었던 기억이 몇 번이나 되는가. 보복이 두려워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눈에 띄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악플은 단순히 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익명성 뒤에 숨은 비겁한 자라는 비판을 인정한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현대처럼 다차원적 가치관이 공존하던 시대는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관작을 뜯고 부활해도 누군가는 분명 공격할 것이다. 그 공격의 수단과 선택받은 표현들은 어떠한가.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협박은 기본이며, 보는 것만으로 수명이 줄어드는 마법 같은 문장들이 즐비하다. 이런 곳에서 아무런 방어 없이 정당한 토론을 요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공격적인 댓글이야말로 진실된 글쓰기였다. 만족스러운 비판은 자존감도 높였다. 단,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범위다. 그것을 스스로 조율하는 태도가 오만하고 위험한 선택임을 알지만 어쩌겠는가. 얌전히 구경하고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 물론 마음 한 구석에 불안감은 있다. 생각이 같은 사람을 공격했을 수도 있고, 감정이 격해져서 악플러가 돼버린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는 희열이고, 두 번째는 최소 열 중 열덟은 내가 옳았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공격적인 댓글, 또는 악플로 여겨질 수 있는 문장을 작성하려면 정당성이 필요했다. 객관적 정보. 여론. 대상의 글투와 대댓글 따위를 종합한다. 그다음은 가이드라인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절대로 원색적인 욕설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젠더갈등, 정치처럼 2차 갈등을 야기하는 언급을 피하고 대댓글로 반격하지 않는다. 적고 보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처음에는 화가 나서였는데. 지금은 즐긴다는 표현이 더 솔직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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