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영 Dec 20. 2015

#23 질문

question 정말 사랑한다면 쓸데없는 질문을.

어떻게 죽고 싶니? 우리는 어떤 곳에 묻히게 될까?


“어찌 보면 가장 보편적인 건데… 산 속에 있었으면 좋겠어. 약간 높아서 밑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그런 곳. 묘비명은 아직 잘 모르겠는데, 대리석도 깔려있고, 산소도 예쁘게 정돈되어 있으면 좋겠어. 그리고 찾아온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탁 트인 곳이었으면 싶어. 내가 죽고 난 후에도 생각나면 찾아와서 추억할 수 있고, 힘들거나 피곤할 때 잠시 기댈 수 있게. 카페처럼 쉬어 갈 수 있는 휴식처가 됐으면 좋겠어.”


“난 수목장을 하고 싶어. 엄청 비싸다고는 하던데…… 내가 묻힌 곳에 나무를 심는 거야. 난 나무의 거름이 되는 거지. 나무가 자라날수록 하늘로 올라가는 기분이 들 거 같아. 묘비명은 나무를 조금 파서 새길까? 거름이 되고 싶다고 하고선 참. 묘비 대신에 내 이름이 적힌 팻말을 하나 달 거야. 내가 나무 한 그루로 남으면 참 좋겠어.”


“다른 나라에 있었으면 좋겠어. 무덤은 크지 않았으면 좋겠고. 두 팔 벌린 만큼도 아니고, 한 팔을 뻗은 정도. 작은 무덤 앞에는 들꽃들이 피어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책이 하나 놓여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바로 내 묘비명인 거야. 주고받은 편지들과 사랑 고백을 엮어서 작은 책을 하나 만들고 싶어. 예전에 죽기 전날에 난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고백을 해야겠다 싶더라.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내가 당신을 참 사랑했다고 말하는 거야.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엄청난 힘이 될 거 같아.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사랑한다고 편지를 남길 거야.”


“난 내가 만든 영화 로케이션에 묻히겠어.”

어떤 장르의 로케이션인지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더 묻고 싶었지만, 조감독으로 바쁜 그와 계속 물음을 이어갈 순 없었다. 문득 그가 군대에 가기 전 만들었던 영화가 생각났다. 어차피 자를 머리, 그는 먼저 머리 정 중앙만 동그랗게 밀었다. 그리고 스릴러 코믹 영화를 하나 찍었다. 그의 무덤은 곧 그의 기념관, 작은 영화관 그쯤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운 책상이나 탁자의 모서리에  쓸모없는 판자나 종이를 넣어 수평을 맞추듯

우리의 삶 속에 쓸데없는 물음들을 끼워 넣고 싶다.

빙빙 헛돌지 않도록 단단하게 매어주고 싶다.

이 질문이 숨 가쁜 청춘의 삶을 고정해주는 단단한 받침대, 지지대가 되기를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22 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