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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영 Jan 16. 2016

#24 짝사랑

unrequited love 본론 없는 이야기.

“대체 뭘 찍은 거야?”

내 사진을 본 친구가 물었다. 특징 없는 건물과 초점 없는 사람들, 정리되지 않은 배경과 수평이 맞지 않는 삐뚠 앵글. “실수로 찍힌 거야?” 친구는 그렇게 정의 내렸다. 그렇다, 나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땐 잘못 눌러진 셔터 같을 것이다. 쑥스러워서  머뭇머뭇거리다 너무 멀어져 버린 그의 뒷모습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순간.


쑥스러움이 많은 나는 한 번도 본론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돌려 돌려 질문을 하고, 같은 공간에서도 창문에 비친 그의 옆모습을 겨우 쳐다본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웃거나 울음을 터트린다. 문자를 쓰다 지우고,  그냥...이라는 말을 많이 하니, 그는 한 번도 내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모든 본론 없는 이야기가 그러하듯 내가 만드는 이야기들은 맥없이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게 뭐야? 그게 다야?”

친구들은 시작과 끝이 없는 이야기를 부정했다. 정말 본론이 없는 이야기는 이야기가 아닌 걸까? 실없이 웃고, 메시지를 쓰다 지우는, 대사 없고 문장 없는 이 이야기는 써질 수 없는 걸까? 수많은 ‘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나’로 바꾸어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나는 말이야... 나는 요즘... ‘너’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하는 나의 방식은 언제쯤 의도가 전달될까?


한 번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겨울 산의 눈이 녹듯이 물에 설탕이 녹듯이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용서해달라고. 나의 사랑도 눈이 녹듯이 설탕이 녹듯이 받아들여질 수는 없을까? 나는 여전히 당신의 옆에 있고, 내 사랑의 단맛도 형체는 없지만 분명한 맛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쑥스러움이 많은 나는 아마도 계속 딴짓을 부릴 것이다. 언젠가 당신이 나의 딴짓을 사랑이라고 읽어주는 날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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