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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영 Jan 16. 2024

뉴질랜드에서 사진전을 열어보았다

 작아서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작은 마을에 대한 애찬 <디어 헌틀리>

그림 guka


한 번은 친구에게 한국에서는 자신의 고향 이름을 따서 가게 이름을 짓기도 한다고 알려주었다. ‘포항식당, 순천식당, 호남집, 보령당’과 같이 고향 이름을 딴 가게를 보고 그 고향 출신이 들어와 인사를 하며 그리움을 나누기도 한다고. 그러자 친구는 헌틀리(Huntly) 사람들은 아마 타지에 가서 가게 이름을 짓더라도 ‘헌틀리’라고 말하지 않고 근처 다른 시골 이름을 붙일 거라고 했다. 헌틀리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가게까지 안 좋게 보일 거라고. 헌틀리는 과거 뉴질랜드 최대 석탄 생산지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광산들이 문을 닫은 이후로 주 수입원을 잃었고, 광부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호주 등으로 떠남으로 인해 전문인력 역시 잃었다. 지역의 특징이 사라져서인지 뉴질랜드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헌틀리는 존재감을 잃었고 그 자리에 되려 부정적인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2019년과 2020년 두 해 연속 페이스북을 통한 대중 투표에서 뉴질랜드 최악의 도시로 선정되었고, 한 유명 블로거는 '작고 못난, 아무 쓸모없는 구멍(Hole)과 같은 곳'이라고 헌틀리를 무시했다. 


하지만 헌틀리는 9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소중한 집(Home)이자 보금자리이다. 나 역시 처음엔 오후 5시면 문을 닫는 가게들과 마트 한 개, 식당 몇 곳을 지나면 거리가 끝나버리는 단출한 시내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하루 여행을 하기에도 갈 곳이 없는 매력 없는 마을이라고 불평하기도 했다. 다양한 이벤트가 있는 대도시와 비교하며 문화생활을 하기 힘든 심심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그래서’ 내가 있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토록 불평했던 다양한 콘텐츠는 한 번에 만들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이곳의 ‘하나의’ 콘텐츠는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마을의 유일한 도서관을 찾아가 사진전을 열고 싶다고 말했다. 일정이 빡빡하게 차있는 대도시 도서관과 달리 일정이 유연했고 새로운 시도에 열려 있었다. 흔쾌히 내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8월 3주 동안 헌틀리에 대한 사진전을 열 수 있게 됐다. 사진전의 제목은 디어 헌틀리(Dear Huntly)’로 정했다.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이 작은 마을의 사람들이 얼마나 멋진 사람들인지, 너무 익숙해서 자신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던 면면에 대해 이방인의 시선으로 알려주고 싶었다. 



복제된 것처럼 비슷비슷한 집들, 외부인의 시선을 경계하며 높이 담장을 쌓아 올린 대도시 풍경과 달리, 헌틀리의 집들은 제각각 모양이 달라서 저마다의 표정이 있는 것 같았다. 또 담장이 없거나 무릎 높이로 낮아서 주민들이 정성껏 가꾼 정원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한 번은 정원에서 가지 치기를 하고 있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는데, 할머니는 레몬이 많이 열린다며 원할 때마다 편히 와서 따가라고 하셨다. 집 앞에 ‘무료(free)’라고 적은 후 오렌지, 레몬, 파슬리 등을 바구니에 담아 내놓는 집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자신의 가족이 먹을 만큼만 남기고 주변 이웃들에게 나누는 모습은 그 어떤 멋진 풍경보다도 오래 잔상이 남았다. 또 헌틀리에는 채석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캐낸 돌로 만든 벽돌은 뉴질랜드 최고의 벽돌로 꼽혔다. 오래된 집들은 대게가 벽돌집이었고 지역에서 만든 동일한 벽돌을 사용해 헌틀리의 고유한 색을 만드는 것 같았다. 은은한 금빛의 벽돌은 하나일 때도 예뻤지만 한 집, 두 집 더할수록 더욱 빛났다. 


헌틀리에서 직접 생산한 벽돌로 지어진 집들


지난 5년 동안 필름 카메라로 담았던 헌틀리의 아름다운 풍경들과 보석 같은 사람들을 전시하며 한편에는 지역 사람들에게 헌틀리가 어떤 의미인지 묻는 코너를 마련했다. 헌틀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라며. ‘헌틀리는 집이다. 이곳에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커뮤니티가 있다.(티나 Tina)’, ‘헌틀리는 나의 수많은 특별한 추억들을 담고 있다. 이곳에서 나의 첫 직장을 구했고,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그 친구는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50년 동안 나의 곁에 있었다. 우리는 함께 이곳에서 춤을 추고 영화를 보며 행복을 나눴다.(마가렛 Margaret)’, ‘이곳에서 나의 남편을 만났고, 나의 아들이 태어났다. 헌틀리는 특별한 장소로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리 Li)’, ‘누가 뭐래도 헌틀리는 나의 천국이자 낙원이다. 나만의 보금자리에서 쉼을 얻고 힘을 얻는다.(에블린 Evelyn)’ 등 지역 사람들이 적은 헌틀리에 대한 고백을 읽으며, 헌틀리가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부정적인 경험보다 환대의 기억을, 비난하는 목소리보다 다정한 인사를 더 오래 붙잡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으면서 행복했던 순간을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격려와 칭찬을 더 크게 듣는 법을 배운 듯하다. 분명 헌틀리에는 대도시에서 편하게 누리던 많은 것들이 없었지만, 이곳에만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 특별한 것들은 내가 특별하게 바라볼 때에만 형체를 드러냈다. 헌틀리를 ‘작아서 볼 것 없는 마을’이라고 말하기보다, ‘작아서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마을’이라고 여길 때, 그 시선의 차이는 결코 작지 않았다.    


글/사진 장혜영, 그림 guka(https://www.instagram.com/madeinguka/)




<디어 헌틀리(Dear Huntly)> 사진전을 소개한 뉴질랜드 뉴스매체(뉴스허브) 기사 보러 가기

구글에 'Huntly Woman'이라고 치면 내 얼굴이 나온다. 이 역시 재밌는 경험이다. :)

https://www.newshub.co.nz/home/travel/2023/08/huntly-woman-hopes-to-showcase-best-of-town-in-new-photo-exhibitio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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